인문학 나눔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중략)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시인 황인숙님의 시 「강」 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시인 황인숙님의 시 「강」 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살다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위로해 줄 수 없도록 미처 버릴 것 같은,
그러나 미치지도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고픈 아니, 말해야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계속 “말하라” 고 합니다.
강에라도 가서 말해야 합니다.
시인 이성복 님도 “이야기 하라” 고 합니다.
“이야기 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 불행을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불행에 거리를 두게 됩니다.
아름다운 꽃을 그리려면 그 꽃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처럼,
불행한 자신을 이야기할 때, 순간적이나마 불행한 자신이 아니게 됩니다.
이야기된 아픔은 거리 두기가 된 것이고 행복이 설 자리가 생깁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그치면 다시 불행으로 돌아 갈 수도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탄식은 성령의 탄식과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아픔과 불행이 하나님께 말하게 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이야기 하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이야기된 불행은 더 이상 불행이 아닙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7:11)
'좋은 말씀 > 인문학, 기독교를 만나다·한재욱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감사 색맹(色盲) 감사 약시(弱視) (0) | 2019.07.08 |
|---|---|
| 나의 장미꽃 한 송이 (0) | 2019.07.05 |
| 내 얼굴에 담겨 있는 것 (0) | 2019.07.01 |
| 사막을 건너는 방법 (0) | 2019.06.28 |
| 결부터 살피라 (0) | 2019.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