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칼 하인츠 가이슬러 교수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사랑은 느림입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빠름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곳에서 느림은 경시된다.
속도는 창조력이 될 뿐 아니라 동시에 사회를 파괴하는 폭력이 된다.
우리의 사회에 점점 가속이 붙으면서 세심함,부드러움,사려 깊음, 생각,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칼 하인츠 가이슬러의 「시간」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속도에 중독이 걸린 현대인들은 늘 바쁘고 분주합니다.
입만 열면 시간이 없다고 투덜댑니다. 시간의 덫에 걸린 짐승처럼 바둥거립니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현대에 오면 “나는 바쁘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의 주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시간이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시간 생태학’을 연구하고 있는 독일의 가이슬러 교수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나는 머문다. 고로 존재한다.”
속도가 주는 쾌감에 노예가 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시간을 느리게 하여 창조의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빠름을 이기는 것은 더 빠름이고 더 빠름을 이기는 것은 더더빠름이 아니라 느림입니다.
느림에는 사랑과 여유와 인내가 있습니다.
나태함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라면,
느림은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적극적인 선택입니다.
느린 달팽이가 풍경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틈틈이 안식하시며 시간을 느리게 보내셨습니다.
고요한 곳으로 가셔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나누며 시간을 느리게 하셨고,
광풍이 부는 바다 가운데에서도 주무실 줄 알았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도 안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분주함 속에만 있지 않았고, 고요한 안식 속에도 있었습니다.
가이슬러 교수는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느림은 무엇보다 사랑과 잘 맞는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빠름이지만,
사랑에서 혹은 평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느림이다.
사랑은 느림에 의지한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느림에 의지합니다.
사랑은 오래참습니다. 기다려 줍니다. 그 느림이 우리를 살립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7절에 나오는 사랑의 속성 열 다섯 가지 중에서,
‘인내’에 대한 것이 무려 세 번이나 나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하나님의 이 느리심이 없었으면, 우리 모두는 소돔과 고모라 같이 멸망했을 것입니다.
기다림 없이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감동을 주는 것들은 모두 세월을 곰삭혀 만든 작품들입니다.
좋은 것은 기다림을 통해서,더 좋은 것은 더 긴 기다림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분명 비행기의 날개같은 속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비의 날개같은 느림도 필요합니다.
속도는 기술을 낳아 높이 날아오르지만,
느림은 그 속도 때문에 지치고 낙오된 사람들의 손을 잡아 줍니다.
느림 속에 깃든 존재의 부요! 사랑은 느림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고린도 전서 13장 4절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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