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지는 기도생활을 살펴보면 압니다. 기도가 잘 되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이고, 기도가 막혀 있거나 우리 영혼 속에서 기도가 흘러나오지 않다면 사탄이 승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속에 영적 전쟁의 승패가 나타납니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또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죄가 기도를 막습니다. 기도 대신 염려하게 하고, 근심하게 하고, 탐욕 속에 살게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도 기도를 방해합니다. 오해와 잘못된 태도로 기도하게 하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치르신 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가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그 어떤 희생도 기도를 효과 있게 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가 기도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기도를 효과 있게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올바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말씀에 이어서 기도에 관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는 기도생활에서 나타납니다. 또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계속 경험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말씀을 다섯 가지 메시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항상 기도하라, 둘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셋째 늘 깨어서 기도하라, 넷째 성도를 위해 기도하라, 다섯째 복음을 증거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입니다. 앞으로 5주 동안 영적 전쟁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에 대한 특별 강조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도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생명의 호흡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너무나 익숙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이라는 단어 앞에서 절망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예배에 참석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자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항상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학업을 할 때도, 잠을 잘 때 항상 합니다. 바로 호흡입니다. 여러분, 호흡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정반대입니다. 호흡을 하기 때문에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의 첫 번째 의미는 호흡이 육신의 생명을 유지시켜주고, 모든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듯이,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호흡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도록 이끌어 주는 힘이요, 능력이요, 영적 삶의 근거입니다. 호흡은 가르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서 합니다. 자연스럽게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면 기도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탄은 자연스러운 호흡을 가로 막습니다. 염려, 근심, 이 세상에 속한 욕심, 탐욕, 육신의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호흡하지 못하도록 가로 막습니다. 염려와 근심이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목을 조르다’, ‘호흡하지 못하도록 숨을 가로 막다’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면 호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우리 영혼의 호흡을 의미합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호흡하는 분 있습니까? 아침에 한 번만 호흡하고 사는 분 있습니까? 호흡은 우리 모든 삶 속에서 항상 살아 있습니다. 숨을 쉴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진정한 호흡은 먼저 들이마시고 내뱉습니다. 이 호흡의 원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임재가 먼저 임하셨기에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생명의 역사가 내 안에 임하셨기에 내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영혼의 호흡인 기도는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기도는 생명의 영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호흡을 통해 산소를 몸 안으로 공급하면서 살아가듯이 기도는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서 자라도록 습관적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답답함을 느낍니다. 세상 속에 살다 보면 갈급함을 느낍니다. 영혼의 호흡이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 자리에 나오고, 홀로 기도하고 찬송하며, 하나님 앞에서 단 몇 마디라도 호흡하게 되면 살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찬양하고, 누군가 대표로 기도할 때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영혼의 호흡을 생기게 해줍니다. 우리가 스스로 기도하지 않을 때 인공호흡기를 끼워주는 역할을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계속 영적 호흡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항상 기도해야합니다. 이것은 율법적, 종교적 생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호흡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우리 영혼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만큼은 우리가 너무나 소중하게, 기쁘게 지켜 야합니다. 항상 기도할 수 있는 영적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호흡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없듯이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이 기도의 시간입니다. 매일, 매순간, 호흡하듯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바랍니다.
일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일상이 되는 삶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두 번째 의미는 첫 번째에서 연결되어 발전됩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일상생활과 단절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일상, 모든 생활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인생의 모든 문제가 기도의 내용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뢰지 못할 일이 없고, 하나님 앞에 불필요한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 자체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기도제목입니다. 일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일상이 되는 삶이 바로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지 않는 것은 두 가지 경우 중 한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진실하지 않고 거짓과 가식으로 꾸며졌을 가능성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사는 인생입니다.
기도란 기도 그 이상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의 모든 필요와 문제를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아룀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들은 물질적 삶을 경시했습니다. 구체적인 필요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을 죄처럼 여겼습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도 들어왔습니다. 어거스틴도 이러한 가르침에서는 균형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리 있는 말이지만 반만 옳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의 필요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은 경제적 필요를 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라는 것을 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기도생활의 올바른 관점이 필요합니다.
선물을 주신 분은 하나님
유명한 크리스찬 문학가 CS루이스의 영적 스승 조지 맥도날드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정말 좋은 선물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선물 안에 선물을 주는 이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하나님은 언제나 그러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받는 사람이 선물 안의 주는 이를 알아보고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선물은 그분의 가장 크고 온전히 만족스러운 유일한 선물인 그분 자신의 전조일 뿐입니다.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선물은 최고의 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꺼이 주실 마음이 있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인데도 우리가 구하기 전까지 주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들의 출처가 어디인지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심입니다. 모든 선물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때, 그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 기도하지 않고도 주어진 선물이 진정한 선물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출처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선물은 그 선물을 주신 분이 담겨있고 그분을 깨달아야 되는데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진정한 선물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실 마음이 있고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구하기 전까지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더디 주시고 때로는 안주십니다. 출처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일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모든 선물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필요를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할 때 사탄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가지고 우리를 넘어뜨리지 않게 됩니다. 선물을 주시는 분을 잊어버리지 않을 때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실족하고 타락합니까? 은사는 선물(Gift)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선물을 주셨는데 선물을 주신 분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마치 자신의 능력인양 착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상관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아뢰고 구하는 믿음이 바로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응답하시는 하나님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의 세 번째 의미는 두 번째 의미와 연결되어 발전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항상 응답할 준비를 하고 계신 분입니다. 항상이라는 단어를 우리에게만 적용하면 율법적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역사하실 준비를 하고 계시고, 항상 우리를 도울 마음을 가지고 계시고, 항상 우리를 향하여 열려 있는 분이심을 깨달아야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열려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할 수 있는 이유를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어느 친구가 여행 중에 찾아온 친구에게 내놓을 음식이 없어서 다른 친구에게 빵 세 덩이를 빌려달라고 요청합니다. 문제는 그때가 한밤중이어서 그 친구가 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밤중에 찾아간 것은 무례한 일입니다. 친구라도 거절하고 싶지만 끈질기게 간청하면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는 그가 일어나 빵을 갖다 주지 않을지라도, 끈질기게 졸라 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눅 11:8).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친구와 하나님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끈질기게 요청하면 친구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빵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도 귀찮고 끈질기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보십시오. 친구는 자고 있는 상황이라서 불편하지만 끈질기게 요청을 해야 들어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결코 불편한 상황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의 간구를 불편해 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항상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는 무리한 상황이 없습니다. 자다 깨어 기도해도, 이른 새벽에 기도해도, 어느 때 어떤 문제이든지 필요를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귀찮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바쁜 삶이 없습니다. 일이 많은 법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너무 지쳐서 신경 쓰지 못할 때가 없습니다. 항상 응답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항상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의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꺾으면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호흡이 더욱 풍성해 질 때 하나님의 생명이 더욱 강하게 역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상 속에 임재하시고,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시거나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항상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에서 ‘항상’이라는 단어를 바꿀 수 있다면 ‘사랑’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가 조금도 단절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합니다. 항상 기도하려면 자주 더 기도해야합니다. 순간순간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만 기도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도 기도해야합니다.
P.T. 포사이스라는 분이 쓴 <영혼의 기도>라는 책에 이런 문구가 있어서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가 안 된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오히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도하라. 좀 더 낮은 차원의 일을 놓고 유추해보자. 때로는 휴식이 가장 필요할 때 오히려 불안하고 들떠 차분히 누워 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억지로라도 누워있어야 한다. 10분만 그렇게 누워있으면 누워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강박감이 차츰 사라지면서 잠에 빠진다. 잠에서 깨어날 때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된다.”
여러분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만 기도하면 항상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아도 기도하면 기도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어느 순간 잠이 드는 것처럼 어느 순간 기도가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모든 필요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합니다. 항상 열려 있는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사탄은 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것이 영적 생활의 승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기도합시다
우리의 기도에 열려 있으며
항상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호흡하듯 기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모든 순간의 필요를 구하며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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