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혁승교수

가나안으로 가는 가까운 길, 그러나 먼 길 (출 13:17-18)

새벽지기1 2017. 9. 6. 07:41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출 13:17-18)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는 사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나이 반도를 통과하여야 했는데, 그곳이 전형적인 사막이기 때문이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 가운데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을 선택하려고 하였다. 그 길이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사막을 통과하여야 하는 이스라엘로서는 가장 빠른 직선 길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다. 그것은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걱정이 되셨기 때문이다. 고대 시대 도로의 명칭은 일반적으로 그 길이 향하고 있는 지역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곧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그 길의 다른 명칭은 '해안길'인데, 당시 고대 근동의 중심인 애굽과 바벨론 지역을 연결하는 국제도로였다.

 

‘해안길’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로였다. 전시에는 군대를 이동시키는 군사도로로 활용되지만, 평상시에는 국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교역로가 된다. 이런 도로를 어느 쪽이 차지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패권을 장악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당시 그 길을 차지하고 있었던 애굽은 도로 주변 중요한 곳마다 군대를 주둔시켜놓고 있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이 당시 국제도로였던 해안길을 선택할 경우, 도로변에 주둔하고 있던 애굽 군대와의 정면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전쟁 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스라엘은 출애굽 자체를 포기하고 애굽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돌려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해안길’이 북상하는 길이라면, ‘홍해 광야 길’은 그 반대편인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해안길’이 가나안으로 가는 최단의 직선 길이라면, ‘홍해 광야의 길’은 최장의 우회 길이다. 전자가 모든 것이 갖추어진 편리한 고속도로라면, 후자는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 길이다.

 

하나님께서 왜 편리하고도 가까운 길 대신에 멀고도 험한 광야의 길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을까? 성경은 도로 주변에 주둔하여 있는 애굽 군대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분명한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출애굽의 영도자로 부르실 때 주셨던 약속에 들어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어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하였을 때,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부름을 거절하였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고 하셨다. 여기에서 ‘섬기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바드’는 ‘예배하다’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시내산으로 와서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백성이 될 것임을 분명하게 약속하셨다.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그 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잊은 채 급한 마음으로 가장 빠른 길인 ‘해안길’을 따라 가나안으로 가려 하였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전쟁’이라는 위기상활을 예상케 함으로 본래 의도하셨던 계획대로 이스라엘을 돌려놓으신 것이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고 사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주변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본래 계획대로 우리들을 돌이켜 주신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고 부른다. ‘인자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헤세드’인데, 어원적으로는 ‘변함없음’을 뜻한다. 우리는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늘 기억하시고, 우리는 약해도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헤세드’ 곧 ‘인자하심’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고 하신 것도 하나님의 ‘헤세드’를 강조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