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주님의 십자가 묵상(3)

새벽지기1 2017. 4. 1. 07:36


샬롬! 찬미예수


예수님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

 

이맘때쯤이면 해마다 멜 깁슨의 예수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 영화가 조명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로 이 영화가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유명한 배우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프리미어가 붙는다.

거기에 기독교계의 소위 유명 목사들이 한몫을 거둔다.

 

사실 이 영화는 일부 언론에서 사실적인 묘사를 두고 참혹하고 폭력적인 영화라고 폄하리만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예수의 고통이 잔인하게 묘사돼 영화 상영을 두고 찬반 논란을 증폭시켰던 영화이다  

내가 생각해낸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예수의 육체적 고난에 대한 회화적 표현은 지나칠 정도로 우려스러웠다.

멜깁슨은 그 영화를 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련된 특정 대목들에서 극도의 사실적인 묘사를 구사함으로써 관객을 영화 장면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을 것이다.

그 영화를 관람하는 중, 예수님의 고통을 대리 체험하듯 흐느낌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신앙이 어린 교인들은 기독교적 내용을 통해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되면 그것을 최상의 작품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순절 기간이 돌아오면 어떤 이들은 예수의 고난을 자기의 육체적 고통으로 느끼기 위한 퍼포먼스를 행한다.

 

영화는 인간의 시각을 통해 그 심성을 자극하거나 호소함으로써 제작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시각적 영상은 성경기록의 제한된 영역에서 벗어난 작가의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 영역이 될 때,

더구나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며 연기하는 배우들이 복음과 무관한 사람들일 때,

경말씀과 성령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예술을 통해 형성되는 신앙적 지식이나 감성은 항상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어떠한 기독교 문화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효과적으로 은혜를 끼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없다.

 

멜 깁슨은 자신이 직접 출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영화 연기에 흥미를 잃게 되었지요. 취미 같아져 버렸어요.

제가 전에 갖고 있던 굶주림 같은 열망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passion이라 함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 정의한다.

그러나 남녀 간의 열정이라는 뜻인 'passion'의 원래 의미가 '아픔'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알려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녀 간의 그 어떤 위대한 전설 같은 사랑도 이미 고통을 잉태한 사랑이며, 그 고통을 피해갈 수는 없다.

 

김난도의 해석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열망에는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이란 눈앞에 당장 보이는 달콤함을 미래의 꿈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데서 온다."   

실제로 우리 인생에선 열망이나 열정이 곧 고통의 근원이 되는 경우도 많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모든 열정은 그저 해롭기만 한 시기가 있고, 희생자들을 어리석음의 온갖 무게로 짓누르는 시기가 있다.

그러다 나중에, 아주 늦게, 그 열정들이 정신과 결합하여, '영적 결실을 맺는' 시기가 찾아온다."

 

"열정의 끝은 후회의 시작이다"는 말이 있지만,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다음과 같은 말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열정에서 동정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passion이라 함은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가 compassion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passion)을 자신도 함께(com) 느껴,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행동이나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아랍어로 라흐민(rahmin)’이라고 하는데,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헴(rehem)’과 어원이 같다.

라흐민은 어머니와 아이의 원초적인 관계, 인간과 인간관계의 원형을 의미한다.

어머니와 아이의 원초적 관계처럼 사심 없이 서로에게 헌신하는 것을 컴패션으로 보는 이유다.

 

컴패션의 사전적 정의는 동정, 연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등이다.

이 단어는 동정(sympathy)이나 연민(pity)과 다르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적극적인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긍휼, 자비를 이르는 말이다.

예수님의 성품과 일생을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향해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 Compassion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he had compassion on them).

그것은 사람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처럼 내팽개쳐져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9:36).

그냥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강한 충동내지는 열정(Passion)이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실제로 예수님의 마지막 생애는 이런 능동적인 사역으로 가득 차 있다.


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