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라원기 목사의 "다시 보는 십자가"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이 7가지 관점에서 바라본 십자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1. 밑에서 본 십자가(세상의 미련한 것),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십자가를 지켜보며 비웃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본 십자가'이다.
2. 위에서 본 십자가(하나님의 공의),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십자가'이다.
3. 매달려서 본 십자가(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십자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4. 옆에서 본 십자가(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옆에 매달려 있다가 회개하고 구원 받은 '강도의 입장에서 본 십자가'이다.
5. 내 속에서 본 십자가(자기 부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를 자기 부인의 삶으로 인도하는지' 말해준다.
6. 지고 가면서 본 십자가(섬김과 희생의 삶),
십자가를 감상하는 자리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섬김과 희생의 자리로 나아감'
7. 세상 속의 십자가(십자가를 증거함 ),
십자가가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세상 속에서 증거 되어야 함.
이 중에서 두 번째 부분인 '위에서 본 십자가' 즉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완벽한 희생제사에 대한 말씀의 은혜를 나누자.
유월절은 영어로 'the Passover', 즉 '넘어가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애굽 전역에 임했지만, 양의 피가 있는 집은 재앙을 면하였다. 죽음의 사자가 그 집에 들어가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에 심판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우리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유월절 양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라고 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유월절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이 죽으신 시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19:14은 예수님이 사형 선고를 받은 시간이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 시라"고 한다.
데렉 티드볼은 이 시간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나타낼 수는 없다. 그분은 유월절 양을 잡는 바로 그 순간에 십자가에 달리도록 넘겨진다. 더 위대한 유월절 양이 드려짐으로 첫 번째 유월절은 유효 기간이 지나 폐기되고 있었다. 그분은 애굽에서의 해방을 영원히 능가할 출애굽을 가져오시는 보편적 해방의 도구가 되실 분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을 시간을 임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일 년에 단 한 번, 즉 유월절 양이 죽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 죽음의 길로 넘기셨다. 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었다"(요19:29)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놀랍게도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를 때 사용하던 도구가 바로 우슬초였다(출12:22). 다시 한 번 애굽에서 제물로 드려진 유월절 어린 양과 갈보리에서 제물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결을 기원하는 의식에 이 우슬초를 사용했다. 출애굽 때 죽음의 사자를 피하기 위해 어린 양의 피를 적시는 데 사용되었던 우슬초가 온 인류를 위한 희생양으로 피 흘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시 사용되었다.
또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다리뼈가 꺾이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하신 것을 주목해야 한다. 로마의 사형 집행인은 십자가에 달린 죄수가 빨리 죽지 않으면 다리를 꺾어 빨리 죽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다. 이 부분이 바로 유월절 어린 양에 대한 내용과 다시 연관된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 양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민9:12). 예수님은 비록 심한 채찍질을 당하셨지만 그 뼈는 하나도 꺾이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또 하나의 증거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매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유월절 양을 잡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그들이 잡아 죽인 양의 수를 계산하면 엄청나다. 요세푸스의 계산에 의하면 유월절 하루 동안 잡는 양의 숫자만 무려 256,000마리였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거의 1500년간 흘린 동물의 피의 양은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많은 수의 동물이 죽게 하셨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웅변적으로 말씀하시기 위함이 아닐까? 예수님의 보혈의 가치는 지난 수천 년간 구약 제사를 통해 흘린 그 엄청난 동물의 피를 다 대신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나게 보배롭고 가치 있는 피였음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다.
십자가의 의미에 대하여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문제의 심각성 정도는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강도로 알 수 있다. 문제가 크면 해결책도 클 것이다 인간의 죄의 문제가 작은 것이었다면 하나님은 한 권의 책을 보내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다. 그것은 이 죄의 문제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를 우리에게 일려준다."
하나님은 구약의 제사 제도를 통하여 인간의 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주셨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셨다. 죄는 너무나 심각하여 오로지 피 흘림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고, 인간의 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희생제사'였다.
신 목사
'좋은 말씀 > 신권인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의 십자가의 묵상(4) (0) | 2017.04.08 |
---|---|
주님의 십자가 묵상(3) (0) | 2017.04.01 |
주님의 십자가 묵상(1) (0) | 2017.03.17 |
항상 기뻐하라(살전5:16-18, 빌4:4-7) (0) | 2017.03.12 |
하나님 성품 닮아가기 (0) | 2017.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