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로마서 6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세례의 의미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들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로 구원받아 그분의 죽으심을 적용받게 되고 하나님이 아들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또한 우리도 다시 살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지만 죄를 용서받은 우리의 부활은 육체적인 죽음 이후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제적인 부활 전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당신의 부활을 우리의 영혼과 마음 안에서 경험케 하시며, 하나님과 생명적인 교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친히 신자들을 접붙이신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되심의 세 측면
이런 구도 속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육체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죽음의 기운에 삼켜져 사망으로 가지만, 영혼은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적인 새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머리되시고 우리는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그의 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은 성경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기독교에서 ‘교회’와 ‘성도’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설명을 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의 측면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1. 유기체적 생명의 머리
첫째로 그리스도는 유기체적 생명의 머리이십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이후로부터 신자는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끊어질 수 없도록 영적인 연결을 이룹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령으로 말미암는 참된 영혼의 생명을 공급받고, 영적인 교통을 누리게 됩니다. 그 생명이 풍성할 때도 있고 빈약할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 생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유기체적 생명의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1.2. 유기체적 통치의 머리
둘째로 그리스도는 유기체적 통치의 머리이십니다.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교회를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꿈은 바로 이러한 통치가 온전히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만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질서대로 통치 받는 것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 일을 위해 이바지 합니다.
이처럼 몸의 사지가 머리에 복종하는 것같이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유기체적인 통치에 복종하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의 두 번째 측면인 ‘유기체적 통치의 머리되심’입니다.
1.3. 유기체적 봉사의 머리
셋째로 그리스도는 유기체적인 봉사 혹은 섬김의 머리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다양한 봉사를 하게 됩니다. 이 모든 섬김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우신 질서와 직분을 통해서 수행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통치를 온 땅에 확장하기를 원하시는데 그러기 위해서 교회에 일을 맡기셔야 했습니다. 그때도 유기체적인 섬김의 머리로서 질서를 통하여 이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 분은 그리스도 예수 이십니다. 한 사람이 자기가 좋을 대로 이 일 저 일을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통치의 질서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 내키는 대로 섬기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일을 맡았을 때 자기에게 뚝 떼어서 맡겨 준 나라인 것처럼 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교회의 질서와 목회자, 그리고 교회에 기관을 세우신 목적을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맡기신 일들을 이루어갈 때 우리는 그 일들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머리되심과 유기체적 생명
여기서는 먼저 그리스도의 머리되심과 유기체적 생명을 다루고자 합니다. 구원받기 전에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생명과는 상관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생과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께 영적으로 접붙여졌습니다.
2.1. 중생과 접붙임
중생은 하나님 앞에 죽었던 영혼이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새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2.1.1.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생명의 근원임
성도는 중생을 통해 그리스도께 접붙여집니다. 그리스도께 접붙여진다고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접붙여진다’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삼위와의 교제를 묘사하는 그림 언어입니다. 나무를 접붙이던 당시의 관습을 사용하여 신자와 하나님의 생명적인 교통을 그림처럼 보여주고자 한 묘사입니다. 이러한 접붙임을 통하여 신자가 누리는 모든 영적 생명에 그리스도께서 원천이 되시는 것입니다.
2.1.2. 그리스도께 접붙여짐: 생명에 참여함
신자가 중생과 회심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접붙여지게 되면 그 결과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중생한 사람 안에 영원히 내주하실 뿐 아니라 또한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를 공급하심으로 죄를 이기고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영혼의 죽음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게 됩니다. 어두움으로 가득 찬 영혼은 밝은 빛을 받게 되니 이는 곧 진리의 빛이며 눈멀었던 지성은 시력을 회복함으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2.1.3. 신자의 영적 생명의 본질: 영적 교통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누리는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는 영적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영적인 연결이 끊어진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영적인 교통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교통은 신자에게 두 가지를 가져다줍니다. 첫째로는 은혜를 통한 신자 자신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그 은혜를 통해 많은 덕행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1.3.1. 은혜를 통해 성품을 바꾸심
첫째로 은혜의 시여를 통하여 신자의 성품을 바꾸십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은혜를 통하여 그 사람을 본성적으로 거룩하게 변화시켜 가시는 성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너무 미워서 괴로울 때 기도하면 놀랍게도 그 사림이 불쌍해지고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또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을 보고 믿음이 약해졌을 때, 밤이 새도록 기도하면 마음속에서 의심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이 분명하게 경험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중생과 접붙임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끊임없이 우리의 생명과 영혼 안에 부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2.1.3.2. 은혜가 다양한 덕행으로 나타남
둘째로 영적 교통을 통한 은혜의 시여는 신자의 삶에 있어서 다양한 덕행으로 나타납니다. 우선 은혜는 우리의 본성을 놀랍도록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른 본성은 아름답게 강화되고, 그분 앞에 바르지 못한 본성은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비칠 때 죽어서 새롭게 변화됩니다. 그렇게 변화된 본성에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고 돕는 아름다운 덕행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2.2.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속을 이루셨고 교회의 머리되셨지만,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이게 하는 일은 ‘성령’이 하십니다.
2.2.1. 성령의 역사에 있어서 세 차원들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과 인간, 창조하신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있어서 세 차원들은 곧 우주론적 차원, 인간론적 차원, 구원론적 차원입니다.
2.2.1.1. 우주론적 차원
첫 번째로 우주론적 차원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혼자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구속은 성자만 담당하셨으며, 구원받은 우리를 믿게 하시는 것은 성령께서 혼자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인 오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아버지와 함께 창조 사역을 수행하실 때 ‘성령님’도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아름다운 계획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창조로 실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의 연결을 이루고 교통하게 됩니다. 물론 삼위 하나님의 영적인 교통과는 차이가 있지만 모든 세계는 필연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아름다운 질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창조 세계의 아름다운 질서’가 바로 ‘성령 안에’ 있기 때문에 그토록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세계를 통치하실 때 드러나는 질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유지됩니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비율을 이루는 창조세계의 탁월한 질서가 우주론적인 차원에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2.2.1.2. 인간론적 차원
두 번째로 인간론적 차원입니다. 인간론적 차원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특별히 하나님, 자연세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사람과 관련됩니다. 인간은 위로는 하나님을 알고 또 아래로는 창조세계를 알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에 합당하게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함으로 써 영적인 교통을 이루며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함께 감당해 나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관계도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또 그가 탐구하고 가꾸는 자연세계가 전달해주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계시들도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효과입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 교통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특별히 부여하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2.2.1.3. 구원론적 차원
세 번째로 구원론적인 차원에서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차원의 역사입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창조세계의 영적인 교통을 모두 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영적인 생명을 인간은 죄로 인해 더 이상 공급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세계를 포괄하는 성령의 작용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나마 이 세상이 무법천지가 되지 않고 인간이 이 세상에서 기본적인 도덕을 행하며 사는 것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뜨겁게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자기를 창조하신 목적을 알고 그분께 감사하는 일은 불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통해 거듭나게 만드셔서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이셨습니다. 이로 인해 자기를 부인하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창조세계와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하여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2.2.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렇게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어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연합을 통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을 받으며, 교회의 통일체로서의 생명을 함께 지닌 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그리스도 예수와 신자의 연합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2.2.2.1. 신비적 연합
첫 번째로 신비적 연합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리키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곧 그리스도를 통한 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연합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연합이며 매우 신비한 연합입니다. 이 연합의 신비의 핵심은 생명의 공유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이고 신자의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생명인데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 생명이 신비한 연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몸을 이루며 신비한 연합을 이루게 되는데 이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신자의 영혼 안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합을 유기체적인 생명의 연합이라고 부릅니다. 이 연합은 명백히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유기체적인 생명의 연합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사랑 안에서 부부가 이루는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결합이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에 있는 유기체적인 생명의 연합을 훌륭하게 닮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생명을 공유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구별되지만 생명에 있어서는 가지의 생명과 나무의 생명이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즉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모든 생장하는 부분들이 하나의 생명을 공유하듯이 그리스도와 신자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머리와 몸의 관계입니다. 머리가 몸을 통치하듯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은 몸의 지체들이지만 머리는 그 모든 것들을 지휘하고 통솔합니다.
넷째로 모퉁이돌과 건물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마치 서로 다른 벽과 기둥들이 모퉁이 돌에서 만나 하나를 이루듯이 그리스도는 그렇게 인간 사이에 있는 모든 다름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합하시며 연합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퉁이 돌을 통해 모든 건물이 세워지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해 다양한 인종과 그리고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름답게 유기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봉사합니다.
2.2.2.2. 언약적 연합
두 번째 언약적 연합입니다. 창조 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언약의 머리는 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은 아담이고 또 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론 두 언약은 다릅니다. 아담이 받은 것은 ‘행위 언약’입니다. 이 ‘행위 언약’은 아담 홀로 받은 것이 아니라 인류의 머리로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 우리는 아담을 머리로 한 언약관계의 참여자가 되어 함께 죄로 인한 형벌을 받은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회복을 위하여 두 번째 언약의 머리를 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맺으신 언약은 ‘은혜 언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에서 맺어진 이 언약은 인간의 죗값을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지불하시면 예수님을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난 주로 높이시고 그분이 구속한 모든 백성들에게 생명을 준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받을 모든 사람들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에 그분이 죽으실 때 우리의 죄도 함께 죽은 바 되고, 그분이 다시 부활하실 때 우리도 그 부활을 통해 하나님 앞에 다시 살아나 의롭다 일컬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머리인 아담으로부터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고 한다면, 두 번째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성령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에는 일방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거듭 배반해도 그분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한번 붙드신 우리의 손을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언약이기 때문에 쌍방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따라서 믿는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면 이 연합은 점점 더 풍성한 생명으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 하고 교회의 질서를 무시하며 자기중심적인 삶을 고수하면 언약의 파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언약생활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늘은 닫히고 그 영혼에는 어둠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생명으로부터 아주 끊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삶은 누가 뭐래도 거의 죽은 삶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신자가 맺는 언약적인 연합의 특성입니다.
2.2.2.3. 영적 연합
세 번째로 영적 연합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인 나라였지만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마지막에 수립될 나라도 영적인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도 영적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사람을 주님이 잘라버리시는 법은 없지만 그 사람이 교회를 통해 행사되는 그리스도 예수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하고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는 언약적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진 생명이 풍성할 수가 없습니다.
이 영적인 연합을 공고하게 하는 비결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사랑할 때 성령에 의해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그분과의 실제적인 연합이 공고해집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았다면 충성을 다하십시오. 나에게 별 유익도 없는데 이렇게 맡은 것만으로도 교회가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사명과 직분을 하찮게 여기고 대충하거나 의도를 가지고 잘못하거나 의식하지 못한 채 찰 감당하지 못할 경우 그 사람은 교회에 끊임없이 고통을 주고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영혼 역시 핍절하여 메마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충만한 은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맡겨주신 사명과 직분을 잘 감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을 공고히 하는 길입니다. 맡겨주신 사명과 직분에 마음을 다하여 충성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질서와 연합에 흠집을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2.3. 성령을 통한 구속의 적용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속의 대업은 성령을 통하여 각 사람에게 적용됨으로써 각 사람을 실제적인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2.2.3.1. 거룩함 안에서 연합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거룩함 안에서의 연합입니다. 그러한 연합 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복을 신자의 각 영혼에게 내리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적용을 통해 주어지는 하늘의 풍부한 자원들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자원을 공급받으며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거룩함 안에서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르고 복음을 몰랐을 때는 죄를 이기며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진심으로 용서를 빌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죄를 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한히 사랑해주십니다. 곤고할 때 은혜를 주시고 순종하려고 하는데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주시고,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을 주십니다. 그것들이 모두 우리가 ‘거룩함 안에서 누리게 되는 연합’입니다.
‘거룩함’은 결국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하는 구별된 본질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거룩함의 원천이 되십니다. 거룩함 안에서 누리는 연합은 바로 거룩함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누리는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자의 영적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재화를 기쁨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는 죄에 대하여 죽을 때에 그리스도의 과거의 죽음이 자신의 내면속에서 실재화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의 깊이만큼 그리스도께서 현재적으로 자신 안에서 다시 사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자는 죄된 육신의 본성에서 서서히 벗어나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2.2.3.2.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가 믿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이미 구속을 통해 이루신 그의 의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가하심으로써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미 구속을 통해 이루신 그의 의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가하심으로써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중생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함으로써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게 하시고 당신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생명의 본질입니다.
2.3.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생명의 역사
그리스도와의 연합 관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나면 은혜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융성하고 활기 있게 살아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싶게 만듭니다. 물론 실수 할 때도 있고 악을 행하거나 잘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합 관계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잘못을 즉시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서 고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다시 은혜와 사랑을 받으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의 생명적인 연합을 보존하기 위해 ‘의무’의 껍질 속에 잘 싸여 있어야 합니다. 그 의무는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지체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행사하시는 통치의 질서, 봉사의 질서, 생명의 교통을 위한 질서들에 대항하고, 그 질서를 방해하며 살아가는 것은 몸에 해로운 음식을 끊임없이 먹어 몸을 망가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 우리는 우리 자신과 그리스도사이의 영적인 연합의 실체나 교회의 진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심사숙고 하지 않습니다. 본질을 떠난 빗나가 열심과 자기의를 가지고 섬김에 취하는 것, 혹은 자아실현을 통해 스스로 보람을 얻는 것은 세상에서 자기를 자랑하던 사람이 무대만 바꿔 교회 안에서 같은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무릎을 꿇고 그분을 사랑함으로 그분께 연합되지 않는 망가진 영혼은 주님을 절대 올바로 섬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갈 곳 없는 섬김을 통해 통치의 질서를 끊임없이 방해하고 주님의 생명의 질서를 훼손할 뿐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기독교 신앙은 진지함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분은 만물의 찌끼와 같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를 모두 내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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