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3-4)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아름다움'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일상생활 속에서 흔하게 쓰이는 말이긴 하지만, 그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것은 미(美)라는 개념 자체가 난해해서가 아니라 어느 하나로 고정시킬 수 없는 다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의 의미를 굳이 구분한다면 ‘외형적인 미’ 와 ‘내면적인 미’로 나눌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구분도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인위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에 대한 두 측면일 뿐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상실한 외형은 화려한 치장일 수 있고, 지나친 내면만의 강조는 독단으로 치우칠 있다. 알찬 내용이 적절한 형식에 담겨 좋은 글이 되듯이, 내면과 외형의 균형과 조화가 곧 '아름다움'이다.
구약성경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여러 단어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다음 두 단어이다.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각각 외형적인 미와 내면적인 미를 표현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하나는 ‘야페’인데, 주로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외모가 예쁜 여자를 표현할 때 이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압살롬이 연모하였던 누이 다말과 늙은 다윗을 시중들었던 수넴 여자 아비삭이다(삼하 13:1; 왕상 1:3). 그렇다고 여자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남자인 다윗의 용모를 표현할 때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삼상 16:12) 때로는 보기 좋게 살진 암소(창 41:2)나 좋은 열매를 맺는 푸른 감람나무(렘 11:16), 혹은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고운 소리(겔 33:32)와 같이 사람 이외의 것에도 사용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토브’인데, 사람이나 물건, 혹은 장소가 지니고 있는 최고 혹은 최선의 상태를 표현한다. 예를 들면, 보기에 심히 아리따운 리브가(창 24:16), 향기로운 향수(아 1:3), 크고 아름다운 집(사 5:9), 궁녀들이 기거하는 아름다운 후궁(에 2:9) 등이다. ‘토브’도 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사용되는 것을 보면 외형과 내면이 엄격한 구분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노아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유혹을 받은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창 6:2)이다. 그러나 ‘토브’는 대체적으로 내면적 아름다움의 표현으로서 본질적인 가치나 지고의 행복을 의미한다.
성경은 본질적으로 내면의 중요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외형적인 것보다는 내면적인 것에 더 큰 비중과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것은 ‘토브’의 사용 용례가 ‘야페’보다 훨신 더 많다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에서 ‘토브’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하나님의 천지창조 과정에서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모든 과정마다 창조의 결과에 대하여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창 1:4, 10, 12, 18, 21, 25). 여기에서의 “좋았더라“가 히브리어로는 ‘토브’이다. 창조 결과에 대한 평가인 ”좋았더라“(‘토브’)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창조의 결과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고이며 최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에 적합하다는 뜻으로 '합목적성의 미'를 표현한 것이다. '아름다움'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 목적에 적합하냐 여부이다. 그런 점에서 '아름다움'은 창조 질서 그 자체이다.
인간 창조로 모든 창조가 마무리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심히 좋았더라“(‘토브 메오드’)라고 하셨다(창 1:31). 히브리어 부사 '메오드' ('매우')는 최상급 표현에 자주 사용된다. 이것은 인간 창조가 여타의 다른 창조보다 훨신 더 중요하였음을 보여준다. ‘토브’(”좋았더라“)를 넘어서서 ‘토브 메오드’(”심히 좋았더라“)로 평가되는 인간은 하나님 창조의 최고 정점이다. 그만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존재이다.
"좋았더라"와 함께 중요한 것은 "보시기에"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평가도 하나님께서 하신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우선순위는 외형이 아니라 중심 곧 내면의 아름다움이다. 그것이 다윗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기준이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여기에서 '중심'은 히브리어로 '레바브'인데, 인간 내면인 '마음'을 뜻한다. 마음 중심이 바르고 아름다우면, 그것이 그대로 외모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사무엘 앞에 데려온 다윗의 얼굴은 매우 아름다웠다(삼상 16:12). '토브'의 아름다운 마음 중심이 '야페'의 아름다운 용모로 드러난 것이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참다운 '아름다움'이 사라져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치게 외형을 추구함으로 생겨난 내면에 대한 무관심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본질적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하여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내면에 대한 관심을 회복할 수 있고 본질을 추구할 능력을 갖출 수 있다. 그것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길이며 아름다운 존재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출처] 신앙의 '아름다움'(1): '아름다움'의 성경적 의미|작성자 viva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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