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바벨에서 생긴 일

새벽지기1 2016. 9. 23. 06:39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은 오늘 읽은 본문의 바벨탑 사건과 가장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온 땅에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더라.”

하나님은 왜 바벨탑 이야기를 언어 문제로 시작하는 것일까요?

노아의 후손들이 번창하였고 그들이 점차로 동방으로 옮겨가다가 시날 평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날 평원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근처에 있는 평원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라고 추정되는 지역입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창 11:3) 인간 문명의 시작을 말합니다. 이어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

이 말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과 대를 높이 쌓는 일”도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는 일”도 또 “자신의 이름을 내는 것”도 모두 한 가지 목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흩어짐을 면해보자.”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무병장수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모두 죽음을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흩어짐의 최종 현상은 바로 “죽음”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려는 모든 것이 바로 성과 대를 쌓는 일이며 후세에 이름을 남기려고 애를 쓰는 모든 것이 흩어짐을 면해 보고자 하는 가련한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흩어짐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흩어지는 것은 눈에 보이는 육체일 뿐, 우리 존재 자체는 영원합니다. 흙으로 돌아간 육체도 영원히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다시 회복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흩어짐, 곧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영적 생명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생명이 죽었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라는 사탄의 거짓에 놀아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최종 목표는 철저한 파괴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 메시지에 속아서 그 소중한 인생과 시간을 오로지 흩어질 수밖에 없는 육체의 흩어짐을 면하는 일에 몰두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온 백성이, 온 세계가 돈이 되는 곳으로 그 시선이 집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겉모습은 달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돈 명예 권력 쾌락 모두 같은 목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어도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외국어 열풍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입니다.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 할 수 없으리라.” 정말 그렇습니다.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이 악하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세상, 누가 바로 잡으며 누가 통제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이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바벨이라고 하는 뜻이 바로 “혼잡”입니다. 흩어짐을 면키 위하여 쌓는 그 어떤 것도 혼란을 초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생명과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주신 이유는 흩어짐을 면하는데 쓰지 말고, 다른 곳에 쓰라는 것입니다. 어디에 써야 할까요?

맥추감사절의 의미를 알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에는 하나님의 구속사 프로그램의 신비한 코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그 절기의 뜻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지킬 때,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맥추 감사절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칠칠절과 오순절입니다. 칠칠절이나 오순절이나 모두 숫자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7이 일곱 개 모이면 49입니다. 오순절이란 50을 말합니다. 기준이 되는 날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날이 곧 유월절입니다. 이집트는 성과 대를 높이 쌓고 자신의 이름을 내기에 골몰하는 세계를 상징합니다. 그곳에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사건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민수기 28:26에 이 날의 핵심 의미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칠칠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유월절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칠 주간이 지난 칠칠절, 즉 오순절 날이었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본 직후,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제자들과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면서 온 방안 가득히 임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령이셨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열정에 타올라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부활하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세상을 구원할 구주시다!”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

이 외침은 방언으로 즉, 오순절 하나님의 성전에 참례하러 각국에서 온 디아스포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자 나라 언어로 행해져서 제자들이 외치는 소리를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곧 하나님의 세계에 돌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종식, 흩어짐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입니다. 성과 대를 쌓고 자신의 이름을 내려다가 서로 통하지 않게 된 언어가 성령을 받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통하게 된 것입니다. 곧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 부활 신앙과 믿음의 진보의 열매를 바치는 날이 곧 오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부자가 되고 형통했느냐가 아니라, 부활의 믿음과 성령의 열매가 내게 맺었는가를 물으셔야 합니다. “여호와의 집에 섰느냐?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34편) 하십니다. 아무리 나쁜 일이 생겼어도, 완전히 망했어도, 일단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왔으면 모든 일을 일단 잊어버리고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 경배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람들은 감정이 행동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행동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받은 복을 헤아리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바치라.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을 송축하라. 내가 이에 순종합니다. 어둠의 세력이 물러납니다. 하나님의 복이 보이고 자원과 감사의 마음이 꿈틀대며 마침내 하나님을 송축하며 하나님의 안식과 영광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향한 감사와 송축은 신앙 여정의 시작이며 종결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벗고 하나님 앞에서 하게 될 것도 감사와 송축입니다.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충만으로 날로 새로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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