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는 시간을 두 종류로 분류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기계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반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의미가 부여된 시간, 뜻이 담겨진 시간입니다. 이 두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간을 사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성경에서의 카이로스의 시간은 특별히 하나님의 의미와 뜻이 담겨진 시간을 말합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새로운 관계는 약속이나 언약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약속은 결혼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통해 전혀 모르던 사람과도 가장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이러한 언약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얼마나 하나님과의 약속이 중요했으면 성경책 이름 자체가 약속입니다. 성경은 오래된 약속인 구약(舊約)과 새로운 약속인 신약(新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경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전들과 성경책이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책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의 언약에 있습니다. 불경은 현자들의 깨달음과 득도의 책이라면, 또 유교경전은 ?책이라면,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책입니다. 도를 깨우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유교의 수많은 실천항목들도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언약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본질은, 한마디로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워지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이 식고 의무와 책임만이 남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른데 신경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규율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고, 벌 받을까 무서워 마지못해 지키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따분해집니다. 나중에는 일거수일투족을 규정하는 율법이 생기게 됩니다. 그 전형적인 것이 바로 유대교입니다. 그러므로 회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40일간의 노아의 홍수 이후에 마침내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 가족들이 처음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의식주 마련이 시급하였지만 노아와 그 가족들이 절감한 것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만이 있을 뿐임을 뼈저리게 체험하였습니다.
모든 새로운 일은 사랑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예배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확인하고 정립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에 들어섰으면 그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라.”(골 3:23) 등산을 가든 돈을 벌든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에 머물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향유하게 합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3) 하나님께서 노아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노아와 더불어 언약을 맺으십니다. 바로 무지개언약입니다. 언약은 환상이 아닙니다. 언약은 언제나 실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실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실현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 무지개와 같은 삶을 나의 현실에서 반드시 실현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무지개 언약이 내 삶에서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홍수사건이 내 삶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첫째, 인간의 모든 계획과 생각이 악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악함이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일상의 삶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의 욕심과 이익만을 도모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인간의 바로 그런 행태들을 쓸어내시려고 홍수를 일으키셨습니다. 만약 내가 그렇다면 내 안에서 반드시 홍수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둘째, 노아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였습니다. 준행을 의미하는 ‘아샤’는 먼저 행하면 나중에 그 이유와 목적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노아는 준행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아샤의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요 10:37-38) 예수님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셋째, 무지개 언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뜻은 곧 예수님의 부활의 예표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형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의미’가 있습니다. 무지개라는 형식에 구원과 사랑과 새출발의 의미를 담으셨습니다.
내 삶이 무지개 색깔로 다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첫째 조건은 빛입니다. 그 빛은 예수님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곧 예수님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조건은 그 빛을 비추어 무지개를 만드는 프리즘인 나 자신을 잘 만드는 것입니다. 그 프리짐이 깨끗하고 커야 영롱한 무지개를 만들어 냅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취하지 않아 나를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들어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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