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새벽지기1 2016. 9. 12. 12:17


예수님께서 참혹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은 허구의 신화가 아닙니다. 일상에서 항상 경험해야 하는 가장 생생한 실재입니다. 어떻게 부활을 내 삶의 가장 생생한 실재로 경험할 수 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며 현재의 처량함과 수치와 분노를 이겨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모든 자녀들에게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친히 반드시 실현하십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셔야합니다.


다음 사항을 듣고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죽음은 인생의 끝이며, 그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
둘째, 모든 인간들의 주요 동기는 돈이며, 만약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선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돈을 위하여 경쟁하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현명한 방법이다.
넷째, 인간은 자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사랑이란 개념뿐이다. 개관적인 실체는 없다.

몇 가지 사항에 동의하십니까? 이것은 스캇 펙 박사의 저서 ‘거짓의 사람들’(The people of the lie)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위의 내용은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거짓말들입니다. 이를 믿게 하여 하나님의 약속에서 떠나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믿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에서의 부활은 별로 믿지 않습니다. 물론 죽은 사람을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기록이 복음서에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나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대표적인 것이고, 세계적인 심장수술 권위자 텍사스 의대 교수인 스미스나 멕시코 외과의사 미구엘 칸토도 완전히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입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난 그들도 죽었고,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몇 년 더 연장된 생명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육체가 죽은 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영생으로 생각하는데, 그것도 틀린 말입니다. 신자들이나 불신자들도 모두 영생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에 대하여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6) 영벌, 영원한 형벌을 말합니다. 육체는 죽었지만 영靈(spirit)은 영생한다는 뜻입니다.


사탄의 말대로, 육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마음대로 살아도 됩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영이 죽지 않고 받게 되는 영원한 형벌입니다. 죽은 예수님의 부활은 결코 ‘종교적 추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삶에서 생생히 경험되어야 할 실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담긴 뜻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세상 어떤 어려움과 역경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능히 이길 수 있단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고난과 역경을 맞서고 이겨 내라. 설사 죽더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품, 영원한 복락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리라”(고전 15:13) 죽음은 그저 육체가 죽는 것일 뿐입니다. 육체는 흙으로 지은 것이므로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합니다. 절대로 육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놀아나지 마십시오. 천국의 소망을 마음에 새기고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런 태도를 cool하다고 하였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으며 땅의 일이나 육체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쿨한 태도가 부활에 대한 출발점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출애굽당시 이집트인들도 부활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신은 개구리 신 헥트였습니다. 겨울에 다 죽었나 싶던 개구리들이 봄이 되면 와글와글 살아납니다. 그것을 보고 개구리를 부활신으로 모셨습니다. 개구리처럼 부활하고 번창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늘 보좌를 움직이겠다고 기를 쓴다면 한심한 일입니다. 이런 신앙행태는 예수님을 개구리 신 헥트로 만드는 것입니다. 제발 예수님을 개구리로 만들지 마십시오.

조니는 온몸의 장애로 인해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조니의 마지막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두 발로 춤을 추는 것입니다. 조니의 말입니다. “성경은 천국에서 영화롭게 될 몸에 대하여 말해 줍니다. 그 말씀은 내게 환상이 아닙니다. 현실이요, 소망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기회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다만 지연된 것입니다.” 조니 에릭슨이 부활 신앙의 진수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시시한 논쟁의 잠에서, 무기력한 책임전가의 잠에서, 지루한 신세한탄의 잠에서 깨어나기로 합시다. 현재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굳게 믿고 나만이 꽃 피울 수 있는 영광을 창출하기로 합시다. 그것이 곧 이 땅에서의 부활입니다.


사탄의 거짓 목록을 뒤집으면 자연히 하나님의 마음과 그 세계가 보입니다.

첫째,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육체의 죽음 뒤에는 더욱 아름다운 세계, 눈물도, 한숨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안식, 무엇보다도 영으로 하나님과 함께 누리게 됩니다.

둘째, 인간의 주요 동기는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객을 네 몸처럼 사랑한다면, 돈도 엄청나게 벌 수 있습니다. 그 돈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인간은 자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영원히 나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또 내가 힘들어 할까봐, 내 가족과 성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도우며 살면 힘들 것 하나도 없습니다.

넷째, 사랑은 환상이나 개념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참새 한 마리, 꽃 한 송이도 잊어버린 바 되지 아니합니다. 나는 참새보다도 훨씬 귀한 존재입니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보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큰 사랑으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그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4-7) 시제가 중요합니다. 이미 우리들은 예수님과 함께 부활과 승천을 보장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부활의 체험과 능력을 누리고 보여줄 책임이 있습니다. 시시해 지지 마십시오. 세상과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마십시오. 굳건하십시오. 예수님 따라 잠자는 자들의 둘째 열매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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