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거나 받으신 적이 있습니까? 목사들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라고 가르치고 교인들은 부르짖으며 응답을 열심히 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께서 침묵하십니다. 응답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의적인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이유는, 응답을 받으면 내가 계획한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내 이득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 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성경에 모두 나와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일을 행할 지혜와 용기를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겠다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일이 제 적성에도 맞고 좋은 일입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에게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불굴의 용기와 탁월한 지혜를 주십시오.” 성과 대를 높이 쌓고 자신의 이름을 내어 흩어짐을 면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엄청난 불행을 초래한다고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중단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진정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살리는 일이라면 막으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바벨탑 사건 이전까지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것으로 범죄한 인간들을 추방하거나 징벌하셨던 하나님께서 그 일을 계기로 전혀 새로운 구원계획을 세우십니다. 새로운 계획은 아브람을 부르시는 일로 시작합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아브람은 일흔 다섯 살 된 노인입니다. 아버지의 직업은 은으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입니다. 당시는 가업을 잇는 것은 관습으로, 자신도 그 일을 하며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가업을 이을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그 시대의 루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3) 일단 하나님의 의도는 그 윤곽이 드러납니다. “큰 민족, 창대한 이름, 복의 근원이 되어 흩어짐을 면하고 싶으냐? 성과 대를 높이 쌓고 네 이름을 높이 내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 한 노인이 있다. 그의 나이는 칠십 오세. 그저 그런 노인이다. 미래의 소망도 없다. 그런데 내가 그와 함께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가 잘 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의지하며 오늘도 살아갑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 성과 대를 높이 쌓는 일이며, 바벨탑을 건설하는 일입니다. 흩어짐을 면하고 이 땅에서 누구보다도 오래 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은 “경험과 인식의 세계”입니다. “전통과 관습의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선조들이 쌓은 경험을 전수 받으며 그 경험을 발전시키며 다음 세대에 이어줍니다. 이념과 철학과 과학의 세계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경험세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계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명령은 그런 것들을 무시하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 더 궁극적인 것을 보고 그것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가 말합니다. “천국을 목표로 삼으면 그 안에서 지상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상을 목표로 삼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단순히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훨씬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신비란 “미스터리”로서 인간경험 밖의 세계를 말합니다. 신앙의 본질이란 인간의 경험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신비로 떠나는 것이 바로 신앙의 여정입니다. 교회는, 인간 경험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를 찾아내고 보존하여 가르치는 중요한 곳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동정녀 탄생으로 시작하여 부활승천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경험세계에는 동정녀 탄생과 부활승천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성적인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얻겠다고 동정녀 탄생과 부활승천에 대하여 현대교회가 침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현대인들이 교회를 찾은 것이 아니라, 점차 교회가 힘을 잃기 시작한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가 이 땅에 침투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땅을 딛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세계를 가장 확실한 현실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이 하나님께서 가라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손의 약속, 둘째는 땅의 약속, 셋째는 복의 근원의 약속입니다. 이 세 가지의 약속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 우리는 21세기의 아브라함들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또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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