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아브라함의 실패와 성숙

새벽지기1 2016. 9. 29. 07:37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길을 떠났습니다. 갈 곳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갈 곳을 알지 못하고 가는 발은 정처 없음에 지쳐가고 있지만, 그의 머리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박혀 있었습니다. 이 점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얼마를 지냈을까? 가나안 세겜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살길을 찾아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보니까 슬그머니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내 사라에게 말합니다.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창 12:11-13) 아무리 아내 사래를 예쁘다고 부추기고 있지만, 자신을 위하여 희생하라는 의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우려하던 대로, 그 땅에 사는 주민들이 사라를 탐내게 됩니다. 그래서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진행하였고, 사라는 바로의 후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덕분에 아브라함은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득을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의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그의 이기주의와 무책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내가 의지하고 찾는 대상이 나를 규정합니다. 한 마디로 아브라함은 아직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작은 손해에도 파르르 떨고 남을 비방하는 말을 하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보다는 맘몬을 섬긴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일은 아브라함에게 참 믿음을 갖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이집트를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때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창세기 13:1-2)

이 구절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사람을 보호하고 축복하시는구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르니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큰 재산을 얻게 되는구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번영과 안녕이라면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는 신앙을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1-12)

신앙 생활의 목적은 “영적 성숙”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아브라함과 롯이 한동안 가나안 땅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각자 식솔들과 가축들이 함께 거하기에는 그 땅이 너무 좁아서 늘 부딪힙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갈라서기로 결정합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윗사람 아브라함이 아랫사람 롯에게 선택권을 준 것입니다.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애굽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삼촌의 뜻밖의 제안에 롯은 눈을 들어서 사방을 살펴보았습니다. 푸른 초원이 펼쳐진 풍요의 땅이 그의 시야를 사로잡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아 보였고 이집트 땅과 같아 보였습니다.(창 13:10)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땅은 결코 에덴동산이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보였을 따름입니다. 사물의 중심까지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과 함께 결단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한 취미활동이거나 여가활용이 아닙니다. 더 없이 강한 부정과 강한 긍정을 동시에 분명히 해야 하는 결단입니다.
신앙은 먼저 “아니오”에서 출발합니다. 내 자신에 대한 “아니오”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란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며 자기중심의 삶을 완전히 버리는 것입니다. “아니오”에 이어 요구되는 것은 “예”입니다. “예”는 바로 “순종”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조용히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셨는가 조용히 바라보며 배웁니다. 그리고 주님의 초청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반응하는 삶,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은 로봇이 되어 기계처럼 움직인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너무나 하나님을 사랑하여서 기꺼이 내 자신을 포기하고 주님과 함께 주님을 닮아 가는 그러한 삶입니다.

인생이란 하나님께서 놓아 가시는 그런 수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원치 않는 일이 생기고 여기저기 옮겨 다닙니다. 인생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가 하면 뜻하지 않는 행운을 얻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형편에 따라 움직일 뿐 자신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수틀의 뒷면처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수틀의 앞면은 나름대로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그림을 그려 가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람의 인생의 수를 놓고 계십니다. 아브람은 살기 위해 이리저기 옮겨 다니지만 그 배후에는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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