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두려웠을까. 사도 바울이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준다고 말했을 때. 사도 바울은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파선한 사람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대표적인 사람들이라고 지적하였다. 사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와 같은 자리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이 구절의 마지막 말인 "훼방하지 못하게"라는 표현은 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믿음과 양심을 근간으로 삼는 기독교의 진리를 훼방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둘째 편지와 연관하여 볼 때 후메내오는 진리에 관하여 그릇된 사람이며 (딤후 2:17-
18 참조) 알렉산더는 사도 바울에게 많은 해를 보인 사람이다 (4:14 참조). 어쨌든 분명하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들의 마지막 자리가 믿음을 파괴하고 양심을 포기한 상태라는 것으로부터 그들은 매우 극악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악질적인 것이었으면 사도 바울이 두 사람의 이름을 명시하기까지 했을까.
비록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기는 했지만 좋은 의미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가인이나 고라나 발람의 이름과 같이 이 사람들의 이름도 성경에 기록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오명이다. 성경책을 읽다가 이 단락에 이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치스런 이름이다. 이 땅에서 성경책의 마지막 한 권이 사라질 때까지 남을 부끄러운 이름이다. 차라리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보다도 훨씬 못한 더러운 이름이다. 사도 바울 자신도 이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역겨움을 숨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을 사탄에게
내어준다고 말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사도 바울이 사탄에게 내어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이었다. "사탄에게 내어준다"는 말은 사도 바울이 겨우 한 두 번 사용한 희귀한 말이다 (고전 5:5 참조). 이것은 기독교로부터의 출교라든가 질병이나 죽음에의 양도를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확실한 것은 "사탄에게 내어준다"는 말이 단절과 악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사탄에게 내어진 사람은 기독교회로부터 끊어지고 악한 상황에 말려든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없으며 도리어 이제부터 사탄의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표현이 절대적이며 종국적인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무런 보장이 없다. 그저 사탄에게 내어주는 목적이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는 사도 바울의 부연이 정말 만에 하나 긍정적인 해석을 가하게 할 뿐이다. 만일에 사도 바울이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탄에게 내어준 목적이 그들을 멸망에 처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더라면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징계를 받아..."라고 말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이처럼 극악한 무리에게도 일말의 소망을 걸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의 이름들이 오명인 까닭은 그것들이 발음하기 힘들거나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름의 모양이나 이름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름이 아무리 발음하기에 좋고 기가 막힌 뜻을 가지고 있다 손치더라도 그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이 조금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악한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더러운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름보다도 그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의 됨됨이이다. 사람이 훌륭한가 못났는가에 따라서 그의 이름도 훌륭한지 못났는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두려워해야 할까. 믿음과 양심에 조화를 이루어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우리도 결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영적인 세력들을 항복시키고 돌아온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눅 10:20)고 하신 말씀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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