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너무 쉽게 잃어버린 행복

새벽지기1 2016. 8. 3. 07:51


아담과 이브, 그러니까 부부는 하나님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타락 이전(以前)을 경험한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 중에서, 아담과 이브가 만나면 타락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엇이든지 주려고 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할 때 가장 마음 아파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말합니다. “속았다.” 그러나 ‘속은 것’이 아니라, ‘타락한 것’입니다.

잊지마십시오. 부모에 대한 효도나 자녀 사랑이전에 부부 사랑이 먼저입니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니라.”(창 2:10) 남편과 아내의 사랑의 회복하여 여러분의 가정을 에덴동산으로 만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내용, 그리고 2장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안식을 누리는 타락이전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3장에서 벌써 아담과 이브의 타락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짧아서 아쉬운 행복입니다.에덴동산에 관한 기록인 창세기 2장은 짧은 것이지만 에덴동산을 회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의 길고 복잡한 이야기도 창세기 2장의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먼저 사탄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지혜롭습니다. 인간을 파괴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간교한 지, 에덴을 파괴하기 위해 이브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합니다. 이 첫 질문부터 거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브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동산 나무의 실과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 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언뜻 들으면 하나님께서 하신 창세기 2:16-17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이브의 대답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금하셨는데, 이브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라고 하였습니다. 동산 중앙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생명나무와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명나무의 실과는 먹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브의 대답을 통하여서 가장 먼저 거부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브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다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이브의 대답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과장’입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신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장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도 수많은 과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철저한 신앙인으로 만지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지나칠 정도로 갖추었으나 진정한 경건의 능력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수 ‘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 그러나 이브는 여러 사람을 지칭하는 복수, ‘너희’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상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아닌, ‘나’에게 명령하십니다. 현대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다수 속에 나를 숨겨버린다는 점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단어는 익명성입니다. 대형교회에서 나를 숨기고 예배만 참석하고는 조용히 사라집니다. 이러한 신앙생활로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가장 큰 특징은 성장입니다. 참 신앙이 생명이라면 반드시 성장해야 하며, 삶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You should die.’ 반드시 100%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브는 “죽을까 하노라”고 대답합니다. ‘You may die.’ 확률은 반반으로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사탄은 원하고 기다리던 답을 얻어내었습니다. 사탄은 단호히 대답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You never die.’ 하나님의 말씀이 순식간에 완전히 뒤집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뒤집히자, 그 순간 이브와 아담은 사탄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사탄은 그들을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얼마나 영악스럽고 간교한지, 무엇을 무너뜨려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알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가장 극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사탄이 나타납니다. 굶주린 예수께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브에게나 예수님에게나 가장 먼저 ‘먹는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우리도 먹는 문제를 들어서 유혹 당합니다. 이브는 넘어 갔고, 모든 사람들도 바로 이 탐욕에 넘어가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물리치셨습니다. “기록하였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이것은 신명기 8:3 말씀의 정확한 가감(加減)없는 인용입니다.


계속해서 사탄은 더욱 큰 것으로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시험도 신명기 6:13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록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그러자 사탄은 마지막 공격을 합니다.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사탄이 얼마나 간교한지 이 제안에서 드러납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록하였으되...” 시편 91:12 말씀의 교묘한 인용입니다. 성도들에게 가하는 마지막 공격도 종교적인 모습으로 위장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대는 거룩한 성전이요, 인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안 넘어 갈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최후의 공격도 똑같은 방법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눅 4:12) 신명기 6:16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또한 가감 없는 정확한 인용입니다. 그러자 사탄은 더 이상 공격할 힘을 일고 물러나 버렸습니다.

사탄의 공격,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외에는 사탄의 공격을 이기고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Christ Lover, Bible Lover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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