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이제 나랑 놀자꾸나

새벽지기1 2016. 7. 25. 13:34


젊은 사업가 매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또 사업도 예수님의 방식대로 운영하려고, 큰 결심을 하고 주일에는 사업장 문을 닫았는데 매출이 계속 떨어져서 걱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사업도 번창 한다고 하였는데…자꾸 회의가 들었습니다. 갈등 속에서 며칠 째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얼핏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스치듯이 지나가는 생각을 종잇조각에 급히 적고는 다시 잠들어 버렸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주일 아침 교회를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뭔가 휘갈겨 쓴 종잇조각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일요일 방문 고객을 위한 특전」


“고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일요일에 하나님과 가족이 너무나 보고 싶어 부득이 휴무를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전정보 없이 찾아오신 고객께 더없는 불편을 끼친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사과의 뜻으로 월요일에 다시 방문해주시면 10%의 할인 혜택과 무료 배송의 특전을 드리겠습니다.” - 직원 일동.

매튜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씨는 분명 자신의 것이었지만, 결코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디어 덕분에 매출은 급상승하고 그의 체인점들도 늘어갔습니다. 그는 사업가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사업보다도 주일 예배가 중요하며, 예배를 성실히 드리면 복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과 핵심을 보지 못하게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탐욕입니다. 둘째는 종교의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언제나 절대자의 이름으로 행해지므로 행하는 사람에게는 근거 없는 우월감이,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죄책감이 생깁니다. 이를 아브라함 헤셀종교가 절대적 교리와 의무로 다가올 때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능욕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로 인해 신자와 불신자 간의 심각한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분의 깊은 뜻과 그 안에 담긴 큰 사랑을 이해하고, 동의하고, 살아내면 갈등이 해소되고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그리하셨는지 하나님의 마음에 집중하여 그 깊은 사랑을 밝혀내고 사람들이 공감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창세기 2장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은 신문의 큰 제목과 같은 것입니다. 2절 이하에서는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함으로써 천지와 만물이 완성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칠일은 안식일입니다. 이날에 하나님과 안식함으로써 우리의 인생도 완성됩니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안식’ 창조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일은 자유이며 기쁨이고, 행복이며 사랑입니다. 6일 동안 일하면서 상실한 사랑과 기쁨을 안식일에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오신 목적 중에 하나는 올바른 하나님의 안식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가장 저주스러운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 다음날 새벽 미명에 부활하심으로써 새로운 안식일 곧, 주님의 날인 주일(主日)을 새롭게 제정해 주셨습니다. 주일을 새롭게 회복된 안식일로 누리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2장은 “타락 이전을 담고 있는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창세기 2장의 세계’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과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에덴동산이 어떤 곳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상징적인 그림과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에덴동산을 찾아서 헤매고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이유는 에덴동산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며, 좌절하고 방황하는 것은 에덴동산을 찾지 못해서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동산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영적 개념’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에덴동산을 찾아가는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셀 수 없이 수많은 삼라만상 가운데, 복을 부여하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에 복을 담아 놓으셨으며(창 1:28) 둘째, 일곱째 날에 복을 담아 놓으셨습니다(창 2:3). 여기에 창조의 핵심이 있습니다. 이 둘이 합쳐질 때 드디어 에덴동산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복된 존재(하나님의 형상) + 복된 시간(안식일) = 에덴동산(생명, 기쁨)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복된 존재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복된 일곱째 날에 들어가면 에덴동산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찾은 에덴동산에서 얻는 행복과 기쁨과 생명은 돈으로 바꾸어서 얻은 것과는 달리 진짜입니다. 이 진짜 생명과 행복과 기쁨을 받고 누리고 베풀며 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신 목적이 바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요 14:16)입니다.

한 캐나다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아내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 그가 요즈음 하는 일은 캐나다 인디언 교회를 목사로서 돌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빛을 통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저주받은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장 사랑 받는 복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감격과 감사를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생애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깊이 기도하고 노력하고 애쓴 결과, 그는 감옥에서 통신 프로그램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마침내 목사가 되었습니다. 당국의 허가로 그는 매주일이면 인디언들이 기다리는 교회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사역을 마치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옵니다. 그 캐나다 청년에게 있어서 주일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장 복된 시간입니다. 그의 사형선고가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사형이 집행되는 그 날까지 주님을 위하여 살다가 주님께로 기쁘게 돌아갈 것입니다. 비록 그는 감옥에 갇혀있지만, 그곳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닌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때 저절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향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