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프란시스 대학의 최준영 교수는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가르칩니다. 그는 ‘거리의 인문학자’라고 불립니다.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식모살이하며 그를 키웠습니다. 야학에서 공부하면서 구두공장, 대중목욕탕, 건설현장에서 일해 십 칠년 만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괴로울 때마다 다시 일어설 마음을 놓아버렸다면 저도 노숙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에 힘이 되는 책을 붙잡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의 강의를 통해 많은 노숙인들이 새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최 교수가 말합니다. “노숙인이 술병 대신 볼펜을 들고 책상에 앉아 인문학에 귀 기울일 때 기적이 시작됩니다. 현재의 근시안을 벗어나 미래를 설계할 용기를 얻게 되니까요.”
노숙인들이 인문학을 통해 재기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몸과 혼과 영의 결합체라는 사실 외에도 또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바로 지(知), 정(情), 의(義)입니다. ‘지’는 생각하고 추리하고 판단하는 이성의 영역입니다. ‘정’은 느끼고 감지하는 감정의 영역이고, ‘의’는 실제로 행동하고 실천에 옮기는 의지의 영역입니다. 세 영역을 통해서 하나님을 포함한 다른 세계와 교감하며 학습하고 성장합니다.
우리는 훌륭한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는데,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아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지식과 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정적으로 깊고 풍성하고 넓어야 합니다. 셋째, 강한 의지가 있어서 어떤 역경이 와도 줄기차게 알고 느낀 바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영(spirit)이 살아나야 하는데, 이 영도 지,정,의 세 통로를 통해서 자라납니다. 먼저 머리에는 성경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여 구원에 이르는 지혜로 머리를 가득 채워야 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나아가서, 알고 느낀 것을 삶 가운데서 실천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당부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그러면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예수에게까지 자랄 것(엡 4:15)을 권고합니다. “참된 것을 하여”란 곧 행동과 실천을 말합니다.
이렇게 지,정,의 세 파트를 견고히 할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건강하게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 행동으로 옮기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목표 두 가지가 생깁니다. 먼저 자신을 점검하여 부족한 면을 찾고 그 부분을 강화시키는 일입니다. 성경 지식이 모자라면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고, 성경공부에 열심히 참여해야 합니다. 기도가 부족하면 기도생활을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실천력이 모자라면 겸손히 봉사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지,정,의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입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실천하는 것이 각각 다르지만 통합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미국 보스톤에 있는 어느 병원 지하 병동에 한 소녀가 격리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소녀가 아기일 때 그 어머니는 죽었고, 알콜 중독자 아버지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 소녀는 마음의 어둠 때문에 심한 정신병을 앓아 사람들이 다가오면 괴성을 지르고, 사납게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의사들은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회복 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 누구도 소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은퇴한 나이 많은 간호사가 이 소녀를 찾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간호사는 매일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그렇게 한 지 6개월, 소녀는 다른 날과는 달리 소리도 지르지 않고, 딴전을 피우지도 않고, 그 간호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녀의 마음에 자리 잡자,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서서히 세상을 향하여, 사람들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회복불가능’이라는 정신 질환마저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렇게 살아난 소녀는 열심히 공부하였고,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하여, 48년간 헬렌 켈러를 길러냅니다. 눈과 귀가 멀고 벙어리로 태어나서, 삼중고를 이기고 인류의 위대한 멘토의 생애를 살았던 헨렌 켈러를 그처럼 빛으로 인도한 ‘앤 설리번 메이시’가 바로 그 소녀입니다.
헬렌 켈러는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란 제목의 글을 ‘애틀랜틱 먼스리’ 1933년 1월 호에 발표했습니다. 그 글은 우리가 무심코 마주하는 이 세계가 날마다 기적 같은 것임을 일깨워 주며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첫째 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 만져서만 알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겠습니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 나서, 서둘러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 하루 종일 인간이 진화해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볼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에 가 공연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이 사흘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은퇴한 간호사’나 ‘앤 설리번 메이시’, 그리고 ‘헬렌 켈러’는 하나님을 알고 배우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들’, ‘예배를 온 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 위에 복을 부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여, 최고의 하나님의 복을 마음껏 누리고 베푸는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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