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이란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면 대부분 경건함, 장중함, 조용함, 무거움, 차분함, 어두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 등의 느낌이 든다고 대답합니다. 과연 거룩은 그처럼 어둡고 무거운 의미를 가진 것일까요?
히브리어로 ‘거룩’을 ‘카도시’라고 하는데, 중요한 네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거룩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구별”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면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성도인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든 것이 빛입니다. 우리는 이 빛을 통하여 어두움과 구별될 수 있습니다.
거룩의 두 번째 뜻은 “밝게 빛나다”입니다. 거룩한 성도는 과묵하고 차분한 것이 아니며, 거룩한 교회는 장엄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아 무엇보다도 밝게 빛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섬기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착해지기 위해서 무당을 찾고 귀신을 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귀신의 비위를 잘 맞추어 액운을 면하자는 사람에게는 그저 두려움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오직 두려움 뿐, 절대로 자유함도 밝음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잘못된 신앙입니다. 밝게 빛남으로서의 거룩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할 때 자연히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세 번째 거룩의 뜻은 “따뜻하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자비와 긍휼이 가득하게 되고, 칙칙하고 음습한 것은 사라져버립니다. 우리가 밝게 빛나고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요,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7-18)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생애는 어둠의 세상에서 어떻게 빛으로 사는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면 밝고 따뜻하게 살아납니다. 빛이신 예수님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아니하면 자동적으로 어둠에 갇히게 됩니다. 그것이 곧 심판입니다.
심판에는 반드시 정죄가 따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악하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포네로스’는 고통을 의미하는 ‘포노스’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단순히 나쁜 행위나 악독이 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들고, 아프고, 슬프고, 버려진’ 고통스러운 모든 것들이 죄입니다. 스캇 펙 박사는 죄를 ‘무지’와 ‘게으름’으로 정의합니다. 무지하고 게으르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하고 창조적인 것에 무지하고, 자기 개선과 발전에 게으르면 언제든지 남에게 피해를 주고 해악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키코모리’를 아십니까?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스스로를 어둠에 가둔 사람을 말합니다. 2011년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선정된 29세의 김가영 여자 청년은 현재 생생농업유통 대표로 100명의 직원과 함께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김가영 청년이 하키코모리였습니다. 어느 날 어둠에 갇힌 자신을 직시하고 빛으로 나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시작한 일은 33평의 텃밭에 상추를 심는 일이었습니다. 가장 쉬웠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여자였기에 농촌할머니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고 97Kg의 튼튼한 몸도 매력적인 노동조건이었습니다. 농촌에 머물며 농사일을 열심히 배웠고, 주변 할머니들의 농작물도 함께 팔아주며 자연스럽게 유통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밥집도 열며, 사업영역을 넓혀갔습니다. 현재 매년 3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은 종교가 아닌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만 세우신 분이 아니라 온 천하만물과 시공간과 생명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21)
마지막 거룩의 뜻은 “새로워짐”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5) 이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하루의 시작은 저녁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해가 떠올라 밤의 어두움을 물리치는 것으로 하나님의 하루가 끝이 납니다. 이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의 하루는 아침에서 저녁이 되듯이 점점 쇠락해 가지만, 하나님의 하루는 저녁에서 아침이 되듯이 점점 새로워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마태복음 5:13,1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3-5 말씀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두운 것을 밝게 하며, 춥고 습한 것을 따뜻하게 합니다. 또한 소금은 썩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새롭게 함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것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Doing-행위)보다 더욱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우리가 무엇이 될 것인가(Being-존재)의 문제입니다.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리고 그 말씀이 내 안에 역사할 때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예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게 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고, 빛이 되어가며, 소금이 되어 갑니다.
바리새인과 예수님은 같은 거룩을 추구하였으나 정반대의 방향을 갔습니다. 바리새인은 헬라어로 ‘파리사이오스’인데 그 뜻은 ‘구별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거룩은 의롭고, 경건하고, 경직되어 있는 율법을 지킴으로서 얻어내고자 한 반면에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거룩은 밝고, 따뜻하고, 그 속사람이 새롭게 되는 그러한 거룩이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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