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 사람에게 처음 편지를 쓰던 가슴 설레던 때를 회상해 보십시오. 서두를 어떻게 시작할까? 그렇게 고심하다가, 수많은 종이를 구겨버리고, 온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지 못하고 수많은 것에 휘둘리며 사는 불쌍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기 위해, ‘무슨 말로 시작할까?’하고 깊이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문을 여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이 말씀이 만물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가장 먼저 창조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그가 만드셨으며, 그의 것이며, 우리 또한 그분의 손안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이며, 모든 차원을 초월해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다 알 수도 없고, 다가갈 수도 없고, 따라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은 삼라만상을 통하여, 숨 쉬는 공기를 통해서도 우리와 가장 가까이 접촉하십니다. 숨을 쉴 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공기와 함께 하나님의 평강이 내 온몸에 충만해질 것입니다.
‘태초(太初)’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고, 또 아무 것도 없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계셨던 때를 말합니다. 시간 역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우연히 만들어지거나,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명백한 의도와 뜻에 따라 진행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각 사람에게 할당된 시간의 양은 각기 다릅니다.
김보미 라는 네 살 된 어린 아기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입원했습니다. 그리고는 뇌사상태에 빠졌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보미 부모님은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 시간을 할당하신 분은 하나님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미를 병원에 기증하고 그 축출된 장기로 여러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었습니다. 아쉽지만 보미 엄마는 보미를 통하여 얻었던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태초’라는 말과 더불어 기억해야할 단어가 ‘창조’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에는 창조를 의미하는 단어가 여럿 있는데 그 중 기억해야하는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바라’와 ‘야차르’입니다. ‘바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는 뜻으로 오직 하나님과 관련하여서 사용합니다. 하나님만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야차르’는 ‘어떤 재료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위대하고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재료를 사용하여 재창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무도 이길 수 없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맡기셔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창조주 하나님께 찬양을 올립니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시104: 2-5) 그는 일상에서 흔히 보는 모든 자연 현상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와 운행, ‘그분의 살아계신 손길’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자연이 하나님의 도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임스 마틴이 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에서 연습을 통하여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면 자연히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온몸으로 받으며, 그분의 품안에서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시편 104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시 104: 33-34) ‘찬양’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자마르’는 ‘악기를 연주하다’는 뜻 외에도 ‘포도나무 등을 다듬다’ ‘가지를 치다’ ‘정리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 빼앗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날아 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
『가시나무 새』 - 하덕규
왜 찬양이 ‘가지를 치다’는 의미가 있는지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오는 노랫말입니다. ‘하나님 찬양’과 ‘하나님만을 즐거워하는 것’은 동의어입니다. 자신의 헛된 바램들과 욕심, 근심과 걱정의 수많은 가지들을 잘라낼 때 그 가지들이 부대끼며, 질러내던 아우성이 잦아들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자연히 어둠과 슬픔과 외로움과 괴로움이 물러나고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간구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19-20)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는 필수입니다.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와 찬양을 올리며 그분 품안에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좋은 말씀 > 신우인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이 이르시되 (0) | 2016.07.12 |
|---|---|
|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물리치고 (0) | 2016.07.09 |
|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0) | 2016.07.03 |
| 오늘 교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 (0) | 2016.07.02 |
| 성찬의 코이노니아 (0) | 2016.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