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사는 최일주 씨의 늦둥이 중학생 아들이 어느 날 민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와서는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민이가 당분간 우리 집에 있으면 안 될까요?” 사연을 들어 본 즉 민이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식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집에만 들어가면 아파트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민이는 한집에서 살게 되었고, 미안해하며 찾아온 민이 엄마에게 친아들처럼 잘 데리고 있겠다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민이가 좋아하는 반찬도 만들어 주고 민이의 고민도 들어주며 사랑한다는 손 편지도 자주 써 주었습니다. 어느 날 민이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민이 아빠가 학교에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는 것입니다. 그날 이후 부부는 민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민이가 울먹이며 다가와 말했습니다. “아줌마 존경해요.” 최일주 씨는 민이 손을 꼭 잡으며 되물었습니다. “민이야 무슨 말이니 무슨 일 있었니?” “어제 밤, 잠이 오지 않아서 거실에 있는 아줌마가 쓰신 책을 읽었어요. 아줌마의 글을 읽고 아줌마가 살아온 것에 비하면 지금 내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고맙구나, 밤새 너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 그날 이후 민이는 멋지게 변화되어 갔습니다. 아들과 늦게까지 공부하고 과거 악몽을 떨쳐 버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민이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면 아빠도 변할 거라며 이제는 두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후 꼴찌를 맴돌던 민이는 전교 1-2등을 하게 되었고 민이 아빠도, 가정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민이는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일환 집사는 한 고등학교에서 줄곧 서무과장으로 재직한 근면, 성실하고 정직한 분입니다. 퇴직 후 4층짜리 다세대주택을 지어 노후를 대비하였습니다. 교회 일을 포함하여 매사에 전심전력을 다했고, 그러다가 탈진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이론이나 교리나 공식이 아니라 작더라도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영향력으로 사람과 세상을 움직여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세상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이야기들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던 유대교의 율법과 로마의 권력을 변화시키고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이 말씀은 우리들이 예수님의 몸, 즉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너희’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지칭합니다. 그들은 극심한 분열과 쟁투, 입에 담기 힘든 성적 행위를 교리의 이름으로 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몸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사셨습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몸’이라 한 것은 우리들도 온몸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살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그분의 ‘지체’라 한 것은 우리들의 삶은 반드시 예수님의 뜻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 12: 25)
민이를 친아들처럼 사랑한 최일주 씨의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이고, 이일환 씨가 아무리 성실, 근면, 정직했어도 그 이야기는 누구나 행하는 진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예수님의 몸과 지체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전 12:28) 성령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가르침을 각 상황에 맞게 생각나게 하셔서 우리들이 주님처럼 살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여기에 열거한 은사들은 절대로 서열이나 계급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예수님의 새로움’을 가장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또 다시 하나님의 자녀들을 서열투쟁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성령님은 파워가 아닌 하나님 자신임을 잘 알았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등 순서를 정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으로 받아들였고, 각자 은사들을 복음전파와 거듭남을 위하여 사용하여 예수님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온몸으로 살아냈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모두 서로 도와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자영업자 성공률이 20%도 안 되는 이 시대에 승승장구하는 자영업자가 있습니다. 청년장사꾼 대표 김윤규 청년입니다. 청년직원 26명과 함께 11개 매장을 운영하는 그의 성공이야기는 너무나 심플합니다. “직원과 손님, 모두 즐겁게”입니다. 이 슬로건을 성실하게 구현하자 매상은 날로 증가하였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살리자 자신도 덩달아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은 교리나 율법 가운데가 아닌 사랑가운데 계십니다. 사도보다도, 병 고치는 은사나 예언의 은사보다도 더 중요한 최고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 은사는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12장 31절 말씀이 가르쳐줍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러면서 그 유명한 ‘사랑’장, 고린도전서 13장을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최고의 은사, 은사 중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천사의 말보다도, 예언하는 능력보다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의 은사보다도,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치는 희생보다도 더 큰 은사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리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 진부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랑만이 새로운 이야기의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말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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