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고후 4:16에서 겉사람과 속사람을 대조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대조에서 주의할 것은 이원론적인 생각입니다. 겉사람과 속사람 혹은 육과 영이라고 할 때 그 두 가지 요소가 내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바울이 육과 영이라고 하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모든 삶을 ‘육’으로, 믿은 후의 삶을 ‘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기 전의 삶을 ‘겉사람’ 혹은 ‘옛사람’으로, 후의 삶을 ‘속사람’ 혹은 ‘새사람’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겉사람과 속사람을 비교하면서 그 뜻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겉사람의 세계는 모든 것이 낡아지는 세계인데 반해서 속사람의 세계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낡아지는 역사란 결국은 쇠락(衰落)하는 역사를 의미합니다. 시간과 더불어 낡아지는 인간의 역사에 비극이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제한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겉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의 현상입니다. 이렇게 낡아지는 겉사람만을 볼 때에는 누구나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속사람의 세계는 날로 새로워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을 넘어설 수 없었던 인간을 해방하여 영원한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므로 우리를 절망케 하던 죽음의 휘장을 걷어내셨습니다. 그것에 가려 보이지 않던 속사람의 세계, 영원한 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영원한 세계에 속한 자가 되어, 약하여지고 낡아지는 존재가 아니라 날로 새로워지며 성장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런 속사람의 세계를 보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세계로 들어감으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낡은 세계관은 버리고 영원을 지향하는 세계관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며 날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며,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바울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당하는 고난을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100년 미만의 삶만을 모두라고 생각하면 거기서 당하는 고난은 결코 일시적이거나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런 인생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가벼운 고난이라고 하였을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인생이 당하는 고난을 잘 알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바라보면서 이 땅의 고난은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좌절과 아픔과 고통을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영생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여기서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 땅의 고난은 그 영원한 세계에서 얻을 크나큰 영광과 비교하면 일시적이고 아주 가벼운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 가지 더, 바울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겪는 고난이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온다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난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고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는 계단이며, 밑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고난이 우리로 생각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삶을 깊이 있게 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하고, 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인생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따라서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이후의 무거운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한다는 바울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바울은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 그가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나라, 불완전하고 제약이 많은 이 세계와 달리 완전하고 완성된 영원한 세계입니다. 죄 때문에 보지 못하였던 그 나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로 새로운 영의 눈을 뜨게 하시어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지만, 일단 그렇게 눈을 뜨게 되면 ‘보이는 세계’에 속한 것들은 정말로 ‘잠깐’일 뿐이며, 정말로 작은 세계, 불완전한 세계, 하찮은 세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조화로운 생명의 세계이며, 그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로 엮여지는 생명 공동체이며, 우리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완성되는 세계입니다. 찬란한 빛의 세계이며, 사랑과 기쁨과 은총이 넘치는 세계입니다. 행복의 폭풍우가 불어오는 완전한 세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 속히 낡은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이 낡아지는 세계 속에 살다가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것과는 정반대인 날마다 새로워지는 세계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며,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것은 우리 눈에 확실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에 더더욱 믿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경험한 것과 같은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한다”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겉사람의 세계관과 속사람의 세계관이 충돌하면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속에 점점 더 확실하게 속사람의 생각이 자리 잡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낡은 세계관과 가치관을 몰아내려면 영원한 세계의 새로운 정보를 많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늘 마음 문을 열고 성경을 보며, 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하늘의 새로운 정보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날마다 새로워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고 힘쓰며, 이 땅의 세계관과 전혀 다른 하늘나라의 세계관을 익히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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