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물감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이 맑고 푸른 가을날이다. 하늘이 너무도 푸르러 쪽박으로 한번 떠 마시고 싶은 마음이다.” 시인의 노래처럼 정말 청명한 가을 하늘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하늘을 잘 쳐다보지 않고, 이상하게도 땅만 보면서 미워하고, 편협함에 갇히고, 옹졸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옹다옹하며 살아갑니다.
“우물 안 개구리”란 속담은 우물 안에만 살던 개구리가 우물 밖의 세상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고들은 것이 없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TV나 라디오 그리고 신문이 없던, 더구나 교통수단이 별로 없어 멀리 나다니지 않았던 때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마을 소식 이외에는 다른 소식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매스미디어와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발달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소식들이 바로바로 전하여져서 옛날과 달리 사람들의 생각의 폭이 커지고, 그 정보의 양이 풍부해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격동하는 세계의 뉴스를 빠르게 듣고 여행을 많이 하여도, 사람은 태어난 땅이 좁은 땅이냐 넓은 땅이냐에 따라서 그 문화가 다르고, 그 생각의 틀이 다르게 마련입니다. 넓은 땅에 태어난 사람들의 생각은 크고 넓으며, 다양함을 받아들이는 폭이 큰 반면에 좁은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생각의 폭은 좁고 편협하며, 배타성이 강합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편협하고 옹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온 우주를 사랑으로 포용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나와 다른 사람을 용서하거나 관용할 줄 모르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결코 원수를 용서하지 않는 모순된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좁은 시야와 신앙을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모든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된 나라인데, 하나 됨에 관심을 두지 않는 신앙으로 어떻게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옹졸한 신앙으로 어떻게 그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참여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는 관용과 화해와 하나 됨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랑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로 만나는 하나님나라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보면, 한국교회가 믿는다고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나라와는 다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는 말씀은 대체로 이 땅의 욕망을 모두 버리고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계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사고의 틀을 바꾸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좁은 땅에서 짧은 생애를 살면서 몸에 익힌 사고의 틀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서로 경쟁하면서 미워하고 자기 욕망을 따라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이 땅 사고의 틀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100년 미만의 짧은 삶이 아닌, 영생을 살아가는 자로 변화되어 영원한 생명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욕망에 사로 잡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우리가 그 세계의 넓음과 영원함과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바라보게 되면 그 생각이 달라지고 그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힘써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가 땅에 집착하면 결국 짧은 제한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하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영원한 삶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바로 하나님아버지 집이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입니다.(요 14:2-3) 그러므로 잠시 거쳐 가는 이 땅의 삶에 집착하는 대신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이제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믿던 생각 대신에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원하고 풍성한 삶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자 그들이 방언을 하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그들을 대단히 편협하고 옹졸한 민족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유대인인 제자들과 그 일단의 무리가 함께 모여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였을 때, 저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제까지 얽매어 있었던 율법의 틀에서 벗어나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게 되었습니다.
닫친 마음이 열리면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면서 담대하게 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편협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혔던 제자들은, 그 생각이 바뀌면서 이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하나님나라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옹졸하였던 삶이 바뀌어 세계를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삶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열린 복음을 따라 그 생각을 여는 대신에 거꾸로 더욱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삶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거듭나지 않고 예수를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땅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리고 하늘나라를 바라보아야 할 텐데, 이 땅의 것은 하나도 버리지 않은 채, 거기에다 하늘나라를 더해보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이 땅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도 가질 수 있다는 이원적인 세계관을 따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이를 경계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 6:24)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림 없이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옹졸하고 편협한 이 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활짝 열린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우리의 모순된 신앙을 깨트려 주셔서 이 땅의 모든 욕망을 다 쏟아내고 빈 마음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이 땅의 옹졸하고 편협한 생각들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이 땅의 삶이 모순투성이임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함은 어리석음입니다. 이 땅에 대한 모든 미련을 훌훌 털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물 안 개구리로 만족하지 말고, 우물 밖 세계 즉, 영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두루 살피며 그 풍성한 영적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사랑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감사하면서 그 역사에 동참하여, 이 땅의 증오와 적개심을 극복하고 사랑의 역사를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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