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영 집사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봄 어느 주일, 2부 예배를 마친 후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전후의 어린 두 딸과 남편과 함께였습니다. 사연을 들어 본즉 이미 폐암4기로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밝고 따뜻했습니다. 성서학당과 제 책을 통해 죽음도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았고,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은혜로 기쁘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픈 마음으로 기도를 해주었고, 그 이후 계속 문자메시지로 기도를 해주고, 감사와 함께 병세의 근황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6월 들어 답신이 없어 걱정하던 차, 7월 둘째 주에 “7월 1일 박은영 집사가 하나님 품으로 평안히 갔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편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임종 기도를 해주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젊은 나이에 어린 두 딸과 남편을 두고 그것도 흡연과는 무관한 폐암으로 죽어야했던 박은영 집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호’는 위험과 위기 상황에서 지켜주는 것을 말합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하루를 살기 위해서는 의식하지 못하는 700여건의 크고 작은 위험을 지나쳐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는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법도를 거스르며 자타를 위험에 빠뜨리는 우리 인간들의 탐욕과 횡포를 피하고, 동시에 온 천지 만물에 깃들여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보호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 이 말씀은 우리들의 시선을 의식주나 일신의 안녕에서 정말 중요한 다른 곳으로 옮겨줍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에 초점을 맞추면 적절한 보호와 풍성한 공급을 받고 누릴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먼저 생각하고 그 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의 실현”이 하나님 자녀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위험으로 가득한 현대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전한 길을 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시 119:33-34) 이어서 말합니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 119-36-37) ‘허탄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샤브’는 ‘거짓’ ‘무익함’ ‘황폐’등을 뜻하는데, 모두 ‘우상숭배’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오직 현세적인 복과 안녕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현세적인 복과 안녕만을 위하여 섬기는 기복신앙은 허탄한 것이 되며,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무익과 황폐로 종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양육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거룩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를 베드로 사도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신다.”(벧전 1:4)라고 말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유업을 잇게 하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누리고 드러내는 삶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십니다.
성경에는 목숨을 위협하는 풍랑을 겪은 두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구약의 요나와 신약의 사도 바울입니다. 요나는 적국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납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로마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납니다. 요나는 불순종 때문에, 사도바울은 오히려 철저한 순종으로 인해 풍랑의 한 복판에 놓입니다. 그렇습니다. 단순히 불순종의 결과가 풍랑이 아닙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인생의 풍랑을 만납니다. 풍랑을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 풍랑을 마주하는 태도입니다. 풍랑 가운데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바로 하나님과의 독대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요나나 사도바울이나 첫째, 기도하였고, 둘째 감사하였습니다. 그리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십니다.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거짓되고 허탄한 것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을 구원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연결시키십니다.
이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예쁜 이지선 양은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귀가 중에 음주운전 차량과 충돌하여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십여 차례의 수술을 마친 후 예쁜 모습은 사라지고 흉측한 모습으로 간신히 목숨은 건집니다. 사고 경위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주일에 대낮부터 술을 마셔야 했던 그 남자의 외롭고 황폐한 심정이었습니다. 다시 깨어난 이지선 양은 마음을 추스르고 보스톤대학원에서 재활상담학을 전공하고 상담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불행한 사람들의 재기를 힘써 돕고 있습니다. 그녀는 “왜 저러고도 사냐고 묻지 마십시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고 의미입니다. 예전의 모습이 훨씬 낯설어 보이고, 현재의 제 모습이 훨씬 익숙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위기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반석이심을 깨닫게 하는 확성기입니다.’ ‘우리를 불러 생명의 도구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풍랑이 끝난 후, 요나는 니느웨로, 사도 바울은 로마로, 이지선 양은 불행한 사람들을 향해서 갔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가십시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와 풍성한 공급을 약속하신 곳입니다.
'좋은 말씀 > 신우인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0) | 2016.06.22 |
|---|---|
| 죽음너머 하나님 세계로 인도하시는 성령 (0) | 2016.06.20 |
| 순례자의 하나님 (0) | 2016.06.16 |
| 신앙은 저항이다 (0) | 2016.06.15 |
| 영생에 이르는 계단 (0) | 2016.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