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영생에 이르는 계단

새벽지기1 2016. 6. 13. 06:52


유대인의 자녀교육’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앞부분에는 유대인 아빠가 자녀를 교육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는 자녀로 하여금 계단을 올라가서 자신 쪽으로 뛰어내리게 하는 것을 가르치다가, 좀 더 높은 곳, 즉 자녀가 뛰어내리기 어려워지는 곳에 이르면, 아빠가 받아줄 테니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는 자녀를 받아 주지 않고 다치게 합니다. 그때 우는 자녀를 달래며 교육을 시킵니다. 그 내용은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하나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도 신앙의 계단을 하나씩 올라갈 때 용기와 믿음,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은혜를 찾아 헤매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율법교사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는 모습을 통해 영생으로 향하는 계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단은 열심의 단계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매우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존재로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엄청난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 율법에 대해 철두철미하고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열심을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는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율법에 대해 능통해서, 가르칠 자격을 획득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존재인 율법교사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 풍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가르치시고,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존경을 받으며 가르치던 사람이, 갈릴리 시골 출신의 배움도 거의 없는 예수라는 젊은이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의 마음에 갈등이 생깁니다. “진짜일까? 진리일까? 찾아가서 확인해 볼까? 내 사회적 지위가 있지 부끄럽기도 하고, 혹시 창피라도 당하면 나중에 어떻게 가르치며, 어떻게 동료들을 볼 것인가?” 이와 비슷한 처지의 인물이 요한복음 3장에 한명 더 나오는데 바로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 공의회(산헤드린)의 회원입니다. 그는 지금의 국회위원보다 더한 권세와 특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고민하다가 결국 밤에, 남의 시선을 피하여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 율법교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니고데모보다 결단성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마틴루터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심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의를 깨닫게 되었고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도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열심 때문에 성도들을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열심과 열정, 충성된 모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생에 이르는 두 번째 계단을 맞이합니다. 그것은 시험과 확인의 단계입니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다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돈을 투자할 때도 면밀하게 조사하고 판단하는 데, 자신의 영혼을 송두리째 맡길 존재에 대해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에 대해 테스트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율법교사도 예수님을 테스트 합니다. 그가 자신의 열심과 삶의 철저함 속에서 생각한 가장 큰 질문은 무엇일까요? 바로 영생입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영생은 그냥 죽어서 어떻게 천국 갑니까? 라는 질문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영원히 받으면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 율법교사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사는 삶,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 질문한 것입니다. 그의 마음 속 모범답안은 신6:4,5(쉐마 이스라엘)과 레위기19:18 말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사랑입니다. 이러한 모범답안정도는 준비하고 가야 당대의 율법교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확답을 얻습니다.

  

이제 올라가야 할 세 번째 계단은 옳게 보이고 싶은 단계, 잘 보이고 싶은 단계입니다. 율법교사는 이제 예수님께 옳게 보이고 싶습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성장의 원동력이 됩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인 성도들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은 결국 우리의 신앙생활에 발전을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시험이 아니라 이제 진정한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네 번째 계단을 만납니다. 그것은 유레카, 즉 깨달음의 계단입니다. 율법교사가 질문한 내용은 ‘누가 이웃입니까?’ 입니다. 이웃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이웃사랑에 대한 질문인데, 그 당시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 서로 충돌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고르반에 대해 말씀하시며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사랑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십니다. 레위기 19:18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원래 레위기의 주제인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는 말씀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거룩과 이웃사랑은 같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부름 받은 자의 거룩한 삶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계단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이나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깨닫고 믿고 있는 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들은 것을 행하는 자만이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마 7:24)’이라고 말씀하시며 듣는 단계를 넘어서 행하는 단계가 믿음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에서도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곧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행함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계단을 밟고 서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서있는 계단에서 용기와 결단, 믿음을 가지고 한 계단씩만 위로 신앙의 진보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은 그것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며 나갑시다. 성령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넉넉히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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