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구원받은 이들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능력의 주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삶의 기준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 전과는 달라야 할 것이며, 자신의 의가 아닌 주님의 의로 말미암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얼마든지 육체를 자랑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율법에 정한 대로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정통 이스라엘 백성 즉 선민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나 에스더와 모르드개로 대표되는 베냐민 지파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구약 율법을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이었으며, 유명한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한 열심 있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기 전의 그는 예루살렘 성 밖에까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로 유명했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기준을 채움으로써 어느 누구보다 율법적으로 흠이 없었습니다. 소위 그의 백그라운드는 당시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으며 이는 충분히 자랑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후, 이전의 자랑들을 해로 여기게 됩니다. 유대주의자로 살 때에는 자신의 외적인 것들과 스스로 생각한 유익한 것들이 다 자랑거리였지만 그리스도를 알게 된 후에는 이전의 자랑거리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의와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 외에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우리 생각과 언어와 행동이 더는 예전의 모습으로 남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으로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초대교회의 대표적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은 헬라철학의 이원론에 입각해서 세상의 것은 다 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들의 주장처럼 다 악한 것만 있지 않고 그 자체로 유익한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그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해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술은 그러한 부분에서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술 자체가 구원을 못 받게 하지는 않습니다. 약간의 음주는 친교나 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면 과감히 해로 여기고 끊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바울은 우상에 바쳤던 음식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형제를 실족케 한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기에 본인은 먹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기존에는 외형적으로 지탄받지 않는 영역에서 얼마든지 자유를 누렸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의 관점으로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쯤 되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분명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더 억압받는 느낌마저 들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대단하게만 느껴졌던 사도들의 삶이 야속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데, 삶에서 드러나는 부분은 어째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요? 바울은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 3:8)고 말합니다.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것을 가능케 하시려고 자신을 화목제물로 기꺼이 드리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저 바울 한 사람의 고백이라고, 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의 고백이자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의가 되었습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의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이 고백이 바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의는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믿는 모든 이들이 의롭게 된 것입니다.(롬 3:26) 믿음으로 주님 안에 거함으로써 그분과 신비한 연합을 이루고 그분의 것을 전부 내 것으로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어긴 우리는 분명 죗값을 치러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죄한 자로 여겨주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뿐 아니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고난을 알고 동참하고 싶어 합니다.(빌 3:10) 그분의 이야기를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극적인 회심의 경험이 없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극적인 회심의 시기나 방법이 아니라 누구에게 붙잡힌바 되었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3,14)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한하신 사랑으로 그분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까지 우리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분은 인격적이시기에 결코 당신의 뜻대로만 억지로 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인자와 자비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심을 믿기에 우리는 억지로 이끌리는 게 아니라 우리를 붙잡으신 그 손을 기쁜 마음으로 붙잡고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자랑해야 할 최우선은 결코 교회 건물이나 목회자, 교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표어나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전부요, 자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세주로 영접했습니까? 그분을 닮아 가며, 그분의 죽음을 본받고 있습니까? 바로 이 목표를 위해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붙잡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목표에 사로잡혀, 오직 예수만을 자랑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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