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예언의 영이신 성령 : 두 도시 이야기

새벽지기1 2016. 6. 6. 22:45


요한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신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은 귀가 쫑긋 서는 너무나 솔깃한 것입니다.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계 19:10) 성령님은 당연히 예언의 영이십니다. 천지만물과 인간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미래와 종말의 일도 샅샅이 알고 계십니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 17:3,4),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성령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온갖 화려한 것으로 장식한 기괴한 여자는 바벨론을 상징합니다. 바벨론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부와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좇아 사치와 향락의 무한 경쟁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세상 자체와 그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달린 짐승을 탄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계 17:9-10) ‘일곱 산’은 당시 세상을 지배하며 초대 교회를 박해하는 로마를 의미합니다. 처음 로마가 세워진 곳이 일곱 개의 산과 언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곱 산은 일곱 명의 로마 황제를 의미하는데, 다섯 황제는 망했고 한 황제는 보위에 있고 일곱 번째 황제는 아직 즉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열 뿔은 로마 제국 내의 여러 분봉왕들을 뜻합니다.

  

즉 바벨론이란 이름을 쓰고 있지만 이 여자는 로마제국을 상징하는데, 사탄과 더불어 온 세계의 가치관을 병들게 하고, 취하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허사를 경영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화려하고 엄청나게 보이는 최강 바벨론도 마침내는 멸망하게 됩니다.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계 17:8)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최후의 결전을 위해 그 모습을 드러낸 사탄이, 끝내는 다시 무저갱(끝이 없는 동굴)에 갇히는 둘째 사망(영원한 죽음)을 맞게 된다는 뜻입니다.

  

왜 그들은 그 엄청난 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파멸할까요?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계17:16) 열 뿔과 일곱 산과 짐승과 그 여자는 원래 한 통속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서로 미워하여 서로 피해를 입히고 자중지란에 빠집니다.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계18:21) 바로 바벨론이 최후의 일격을 받는 장면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짐승과 음녀의 바벨론에 이어서 또 다른 한 도시를 보여줍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그런데 그 신부의 옷은 바벨론과는 다른 옷입니다. “그에게는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8) 즉 곱게 단장한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새 예루살렘에 대한 설명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 이 두 도시의 미래가 예언의 영이신 성령께서 보여주신 예언의 실체입니다.

  

요한계시록 전반부에는 당시 일곱 교회에 보내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현재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 책망하신 다음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 말씀이 반복되는데, ‘이기는 자는’‘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 17, 3:4-5, 12)입니다. 무엇을 이기라는 말씀일까요? 세상 것에 대한 욕심과 유혹과 미혹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첫째, 성령님은 개인의 길흉화복에 대해서는 침묵하십니다. 둘째, 미래의 큰 그림을 보여주시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로 종말론적인 존재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최후 승리를 믿고, 당당하게 단단하게 담담하게 흔들리지 말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기 원하십니다. 그런 삶을 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솔로몬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게 하셨습니다. 당연히 성령은 개인의 길흉화복을 가르쳐주시지 않습니다.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람들이 사는 동안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 3:12) 성실히 살면서 형편껏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도우며 선을 행하는 것이 최고의 삶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 3:13) 욕심 부리지 아니하고 땀 흘려 번 돈으로 분수껏 사는 것이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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