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과 기독교의 본질을 정확히 모르면 부지불식간에 목사는 종교장사에 빠지고, 교인들은 영업사원과 고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2) 포도주와 젖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뜻합니다. 그것을 ‘돈 없이, 값없이 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물건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포도주와 젖을 ‘거저 얻으라’ 하지 아니하고 ‘사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모두 거저 주어집니다. 그리고 다른 누구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떼를 쓰거나 구걸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공짜라서 값싸게 여겼다가는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사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사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샤바르’는 ‘자세히 검사하다’ ‘희망과 인내를 갖고 기대하다’ ‘관찰하면서 기다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그 가치를 알고 가장 소중하게 다뤄야합니다. 그리할 때 돈이나 능력이 없어도 누구나 얻고 누리며, 또한 그 은혜위에 은혜가 더해집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친히’에 해당되는 헬라어 ‘아우토스’는 ‘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제사장도 아니고 목사도 아닌, 바로 성령 자신께서 나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최상의 것은 무엇일까요?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 최상의 것은 바로 ‘하나님의 깊은 뜻’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세벨 수하의 바알 제사장 450명과 아세라 제사장 400명을 상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온 이스라엘에 증거한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이세벨이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칼을 피하여 멀리 멀리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는 로뎀나무의 초라한 그늘에 지친 몸을 맡기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이 생명을 거두소서.”(왕상 19:4)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음식과 물을 보내셨고, 기운을 차린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으로 불리는 호렙산으로 가서 한 동굴에 숨어들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왕상 19:9) 엘리야는 죽기를 원할 정도로 그 상황이 참담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신앙의 맹장 중의 맹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일이 벌어집니다. 앞이 캄캄합니다.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들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타진하다가 맨 마지막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미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머리 굴리고, 책임전가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걱정하고, 절망하지 말고, 먼저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간구를 들으십시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을 향하여 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대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쉈고, 바람 후에 지진이 일어나서 온천지를 흔들었으며, 지진 후에 모든 것을 사르는 엄청난 불이 일어나서 산천초목을 태웠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여호와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지난 후 아주 세미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여호와께서 계셨습니다.
드디어 엘리야가 하나님을 발견하고 아룁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4) 엘리야의 탄원의 내용은 이전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심정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화가 나있었습니다. 그 심정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자신의 아픈 심정을 겸손히 아뢰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 길을 잃고 있습니다. 저는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라고…이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는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 19:16)
십자가에 마음을 집중하며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사람,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 주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내가 시련으로 지쳐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억울함과 분노에 치를 떨 때, 죄책감으로 몸서리를 칠 때, 가장 깊은 곳에 찾아오셔서 조용히 감동시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낙담한 나에게 모든 필요에 대한 풍성한 은혜가 이미 하나님의 약속들 안에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나를 올바른 목적, 즉 절망감에서 벗어나 남을 살리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나를 절망시키는 시련과 고난까지도 장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기쁜 일이 없는 시대, 불안과 두려움만이 활개 치는 시대일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해답과 방향을 알고 계시는 성령께서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 이미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 세미한 음성을 들읍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무엇이든지 묵묵히 행합시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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