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모두 31,079개의 구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구절은 무엇일까요?
빅터 프랭클 박사는 ‘로고테라피’라는 귀중한 정신치료법을 창안한 분입니다. ‘의미요법’이라고도 하는 이 정신 치료법의 핵심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건강이나 돈이 아닌, ‘참 의미’에 있다는 것입니다. ‘의미요법’은 놀랍게도 2차 세계 대전 당시 그가 갇혔던 죽음의 수용소에서 창안하였습니다. 유태인인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에 도착한 직후, 옷이 모두 벗겨지고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했습니다. 이미 가족을 모두 잃은 그는 정신적 자식과 같은, 유일한 삶의 의미였던 자신의 원고마저 타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자포자기한 그에게, 앞서 처형당한 유태인이 입던 더러운 죄수복이 던져졌습니다. 그는 기계적으로 그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옷 솔기에서 뭔가 작고 딱딱한 것이 감촉되었습니다. 그것은 돌돌말린 작은 종잇조각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꺼내어 펼치자 거기에는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뜻)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어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4-5)는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낡은 종이 위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그 구절을 읽었을 때, 프랭클 박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지옥과 같은 상황에서, 살기위해 조금 더 먹으려고, 조금 더 편해지려고 애쓰지 말고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구절은 하나님의 생생한 음성이 되어 모든 것을 침묵시키는 큰 위로와 함께 그로 하여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이 ‘성경 중에, 더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그 날 이후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꾸 바닥으로 내려가는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집중하였습니다. 때로는 닥친 상황이 너무나 아프고 힘들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울면서 애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프랭클 박사의 눈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고양시키기도 하며, 때로는 비열하게 만드는 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생의 의미’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요법’을 창안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아주고, 그들을 어두움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위로’는 조용히 다가와 우리를 짓누르는 무력감과 절망감과 우울감을 하나씩 덜어내고 다시 일어서게 하며, 또한 날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바로 ‘위로의 영’이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단순히 위로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권태나 절망 가운데, 위안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에게서 일시적인 거짓 위로를 제거하시고 영원한 위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그 과정이 호세아서 2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것들이, 자신에게 오면 모든 것을 얻고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호 2:5) 그래서 사람들은 부와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추구합니다.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런 행태는 곧 ‘음행’이라고 부를 만큼,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파괴하는 치명적인 것입니다.
형통만이 하나님의 인도요 도우심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라”(호 2;6) 그래서 형통할 때는 감사하고 곤고할 때는 생각하라고 충고합니다.(전 7:14) 그러나 막는다고 가지 않을 우리들이 아닙니다. 의지가 강해서라기보다 어리석고 고집불통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대로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외에 의지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그 의지하는 것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는가를…하나님은 뒷전으로 밀어낸 채 얼마나 불안해하고, 분노하며, 허사를 경영하고 있는가를…
모든 것이 막힌 그 때가 바로 최고의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용히 불러 그 분 앞에 앉히시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호 2:14-15) 들(광야)은 인간이 노력한다고 소출을 거둘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곳으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인생의 참 의미를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낸시 뉴홀은 “광야는 사람이 아직 질문하기를 배우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입니다. 이 단어는 ‘다바르’(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뜻)의 명사형입니다. 또한, 지성소를 히브리어로 ‘드바르’라고 하는데 ‘광야’와 동의어입니다.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로서 구약시대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한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곳입니다. 그런 곳이 곧 광야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과 독대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는 곳이 광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십시오. 위로와 능력과 지혜의 원천이신 그분께로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지치셨습니까? 그저 쉬셔도 됩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쉬십시오. 그렇게 쉬노라면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를 심령 가득히 담으시며,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답답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친히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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