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확신케 하시는 성령

새벽지기1 2016. 5. 27. 07:00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종속적인 존재로 살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인간들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 모두가 아버지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이 되는데 있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길과 한계적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길이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외로운 악전고투와 헛된 몸부림을 멈추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진정한 주인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내 중심에 모시고, 그 분의 인도를 받으면 그 누구라도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이 됩니다.

   

그 주인공이 되기 위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첫걸음은 자신이 태초부터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이며, 아름다운 주인공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흔히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자질이나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들여다보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그 결과 특정한 사람을 리더로 세우고는 ‘저 사람을 따라가면 나를 살려주겠지.’라는 착각 속에 그를 맹종합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잘못되면 그 리더를 비난하고 다시 새로운 리더를 기다리거나 찾아 나섭니다.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 특히 종교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납니다. 여기에 빠져 있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잠재적 리더십을 개발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상황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휘둘리는 삶을 필연적으로 살게 됩니다.

  

리더십은 특정한 자질이 아닌, 존재방식입니다. 삶의 존재 방식이라는 것은 ‘나는 리더다’라고 자각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과 고통, 인내를 감내하겠다는 각오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하나님이 없어도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고아의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고아의식은 ‘빈곤 의식’도 동반합니다. ‘인간쓰레기 마리아’라는 별명을 가진 한 여인은 끼니를 얻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졌고, 그녀의 아파트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주어 온 온갖 물건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7년 전에 사망한 거부 변호사요 은행 중역이었던 사람의 외동딸로서,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모빌 오일 주식과 유전들과 여러 회사들의 증권과 8개의 예금 통장이 그녀의 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삶은 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녀의 이런 삶은 고아의식과 빈곤의식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 8:13-14) 이 말씀은 종교적인 가르침으로 받기 쉽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2:4-5에서는 사람의 지혜를 육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영으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곧 육적인 삶이란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의 성실과 근면을 말합니다.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보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홀로 악전고투의 삶을 사는 마리아와 같은 삶을 말합니다. 우리 현대인들의 피로와 근심은 인간의 지혜에만 의존한 가련한 결과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를 삼기로 하셨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노예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주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굴복시키시고,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새로운 땅 가나안으로의 여정이 시작되려는 찰나, 새 주인의 첫 명령은 맏아들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장자마저 빼앗는, 더 무자비한 주인일까요? 왜 맏아들을 바치라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집안을 대표하는 맏아들이 하나님의 것이 되면, 그 집안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양자의 영,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양자의 영이신 성령을 받고나면, 하나님이 무서운 주인이 아니라, 자애로운 부모가 됩니다. 어린 자녀들은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릅니다. ‘아바 아버지’가 바로 ‘아빠’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들이 바로 내 자녀들이란다.”라고 외치십니다.(롬 8:16) 이 외침은 태초부터 이어진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말로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롬 8:17)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는 ‘The joint-heirs with Jesus Christ’로서 단순한 공동 상속인이 아닙니다. 부자 아버지가 아들 둘에게 joint heir로 묶어 엄청난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재산을 다 날려버렸다고 합시다. 억울하지만 동생도 함께 망해야 합니다. 동생이 다시 재기하여 더 큰 재산을 모았습니다. 형이 밉지만 그 재산을 함께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Joint-heirs의 법적 효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어리석은 우리, 미덥지 못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묶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이 고난의 현장에 와 계십니다. 부활 또한, 우리가 잘해서 구원받고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묶어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나라에 계심으로 우리도 부활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조치하셨을까요? 놀고먹으라는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복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욕심을 부리거나 불의한 일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실패할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자신을 교정하고 지혜를 배웁니다. 언제나 성령 하나님께서 도우시며, 반드시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확신케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세상에서 다함께, 하나님의 자녀답게 열심히, 신나게 살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