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헛소리 탐지기(crap detector)’를 내장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헛소리 탐지기란 여러 말 중에 그 진위와 가치를 판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정보를 참 지식과 참 지혜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깊은 분석과 성찰이 있어야 하는데 그 능력이 바로 헛소리 탐지 능력입니다. 오늘날 각종 미디어를 통해 넘쳐나는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는데도 이 능력은 필수적입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고후 4:3) 이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을 올바로 받지 못하면 멸망한다는 의미인데, 사도 바울은 올바른 복음이란 자신이 전한 ‘우리의 복음’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우리의 복음’을 판별하기 위해서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의 신들’이 복음의 광채를 받지 못하게 훼방합니다.(고후 4:4)
세상의 신들이란 번영으로 미혹하며 눈에 보이는 현세적인 복만 좇도록 부추기는 미신들과 기복신앙을 뜻하며 그 배후에는 어둠의 영 사탄이 있습니다. 돈이나 권력이 삶의 목표가 되면 당연히 그 노예가 됩니다. 얻기도 힘들뿐 아니라 설사 얻었어도 그에 휘둘립니다. 반면 성령께서 조명하시는 빛은 현세적인 복 대신 하나님의 형상에 집중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게 합니다.
둘째, 참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이시며 그분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에 집중합니다.
자신을 전파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특정 종교 행위나 특정 사람이나 특정 그룹을 통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 거짓 복음들입니다.
셋째, 참 복음은, 예수를 위하여 스스로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게 합니다.(고후 4:5)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종’이라고 자처하였습니다.
살리려는 마음과 섬기는 자세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만이 성령님을 올바로 만나고 올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살리시는 영이시며, 무례하지 않으시며 오래 참으시며 온유하신 성령님은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분입니다.
성경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감흥이 일어나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감흥이 일어난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망이 내 마음을 깊게 찌르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로 새 힘을 얻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소망과 인내심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마음은 각 사람의 성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심령에 영적 빛을 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의한 것입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였던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는 철저한 반기독교인으로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자신의 천재성을 성경과 기독교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교수가 기독교 논문을 읽으며 “하, 이놈들 여전히 예수가 부활했다고 떠드네.”라는 말에 갑자기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들은 아직도 예수의 부활을 주장하는가?” 그리고 다시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 빛을 비추시는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지적 무지보다 훨씬 더 무서운 영적 어두움은 마음을 악으로 향하게 하며 거룩함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하며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영적 어두움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것을 ‘흑암의 권세’(골 1:13)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임하기 전에는 하나같이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며’(요 3:19), 그 결과 삶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 어두움은 공부나 수련이나 종교행위를 통해서도 거둬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19-21에서 육체의 일이 어떤 것인지 길게 나열해 놓았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 모든 일들이 흑암의 권세의 조정을 받는 육체의 일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즐겼던 여러 가지 것들이 지금은 역겨워 집니다. 모두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빛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두움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습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반드시 물러납니다. 그런데 우리 안을 들여다보면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행합니다. 그만큼 흑암의 권세는 무섭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에 대해 깊은 탄식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 있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없습니다. 딱 한 분 성령님만 가능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 시니라.”(고후 5:5) 보증에 해당되는 헬라어 ‘아라본’은 ‘담보물, 선금’을 뜻합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선금이나 담보물은 믿을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담보물은 얼마나 믿음직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시키려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약속을 믿고 오늘의 고난을 오히려 즐기고 감사하며 이기는 것입니다. 좌절하거나 분노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잠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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