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이번 봄비는 모든 이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그런데 뭐 그런 것까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느냐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런 마음과 태도가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참예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 아버지의 처사로 겸손히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마음 한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런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풍요를 바라는 마음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세상의 풍요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고 영광스러운 사랑과 복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최고대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태초부터 그랬습니다. 흙으로 우리 몸을 만드신 다음, 우리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창 2:7) ‘생기’는 히브리어로 ‘르아흐’ 또는 ‘네솨마’, 바로 성령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생령(네페쉬하야)’ 즉 ‘살아있는 영적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 뜻에 부응하는 삶을 살라고 ‘성령’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성령은 첫째,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케 하시는 영’입니다.(고전 2:11) 성령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은 성품과 경륜을 깨닫고 그에 부응하는 진정한 예배와 자녀다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성공 강박증과 보상심리에 갇히지 아니하고 어떤 어려움도 견디며, 이겨냅니다. “능력 주시는 성령 안에서 모든 것을 하게 됩니다.”(빌 4:13)
성령은 둘째,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는 영’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아무리 억울하고 힘들어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얻은 아름다운 이름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자신의 처지나 외모나 경력은 전혀 하나님의 체크목록이 아닙니다. 유일한 체크사항은 하나님과의 동행 여부 곧,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과 연합하고 있느냐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더러 성과를 내라고, 성공해야만 한다고 독려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이지 하나님의 영업사원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이미 성령께서 내주하심을 믿고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이 되어 묵묵히 푯대를 향해 가면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성령은 셋째, ‘자유로운 영’입니다.(요 3:8) 참 자유의 사람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평판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참 자유는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고, 예수님의 진리를 살고,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주어집니다.
김수정 PD는 촬영 차 들른 영국의 한 동네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동네 꼬마들 모두가 스케이트보드 위에 엎드리거나 앉아서 타고, 세발자전거의 페달도 손으로 구르고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일곱 살짜리 소녀 ‘로지’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로지는 선천적으로 두 다리가 없지만 손으로 스케이트보드와 자전거를 탑니다. 그것도 어느 아이보다 빠르고 날렵하게. 김수정 씨가 만난 로지는 쾌활하고 자기주장도 강한 귀여운 수다쟁이였습니다. 로지에게 한 없이 사랑스런 미소와 눈길을 주던 로지 엄마가 말합니다. “웃기죠? 저거 로지가 만든 이 동네 유행이에요. 로지가 스케이트보드를 엎드려서 신나게 타는 걸 보고 아이들이 언제부턴가 저렇게 따라하고 있어요.” 그 말에 김수정 PD도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로지를 촬영하느라 낮은 자세로 있었던 그에게도 세상이 전혀 다른 풍경과 의미로 다가온 것입니다.
당당하고 쾌활한 일곱 살 꼬마 소녀 로지는 성령을 받은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웅변적으로 보여줍니다. 첫째, 자신의 불구에 전혀 기죽지 않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과 부모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존재로 당당합니다. 둘째, 오히려 사람들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와 시각을 열어줍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셋째,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여건을 마음껏 향유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령께서 나를 떠나시는 때를 아는 것입니다. 언제 성령님께서 우리를 떠나실까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창 6:2-3)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풍요에 미혹되어 마음을 주어버렸고, 그러자 성령께서 그들에게서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흙으로 만든 육체와 성령의 결합체인 ‘생령’으로 서의 인간에게 이제 육체만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껍데기만 남은 육체를 120년은 살게 하셨습니다. 120년 동안 잃어버린 성령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결정하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여부입니다. 그래서 태초부터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삶에 개입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운행하고 계십니다.
“육체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체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요 20:22)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코에 불어넣으셨던 ‘생기’, 우리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가다가 잃어버린 거룩한 영을 예수님께서 다시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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