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무화과나무의 그늘

새벽지기1 2016. 5. 13. 07:00


종려주일입니다. 파릇파릇 싹이 돋고, 생명이 움트는 계절입니다. 이 계절이 되면 예루살렘에서 시끌벅적 찬양하던 군중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찬양하던 그 입으로 4일 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이 시점에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심겨진 것”이 아니라 “세워진” 나무입니다. 그 나무는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분이 오르신 나무입니다. 생명 없는 나무 두 토막에서 우리 영생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은혜 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계절에 우리는 또 다른 나무 하나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 나무는 갈보리가 아니라 베다니 근처 벳바게에 있는 나무입니다. “벳바게”라는 말의 뜻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들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베다니 근처 벳바게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예수님께 큰 벌을 받았습니다.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유월절 명절을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에 베다니에서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배가 고프셨습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었습니다. 어느 누가 봐도 열매가 맺혀있을 것이라 생각할 만큼 그 무화과나무의 잎은 무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잎이 그토록 많아 열매가 있을 법한 나무에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막 11:14)

   

이 사건에서 우리는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마가의 도움으로 우리는 그 이상한 점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열매가 없는 이유가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때도 아닌데 너무나도 잎이 무성해서 마치 열매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 나무에게 가혹한 벌을 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실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행동에는 예수님의 어떤 의도가 담겨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역시 이상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장사 행위를 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환전하고 장사하는 이 구역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방인의 뜰입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이 장사를 목적으로, 온 세계에서 찾아온 이방인들이 예배하는 장소인 이방인의 뜰을 다 빼앗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눈에는 이곳은 단순히 이방인 개종자들이 모여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 세계 사람들이 모여와 예배할 자리로 보였던 것 아닐까요?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내 집은 열방이, 온 민족이 예배하는 집이다.”

  

이것은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심판입니다. 유대적인 틀 속에 갇혀 있는 종교는 타락하고, 냄새나며, 썩어가는 종교가 되었다고 심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심으로 성전을 장사의 소굴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으로 회복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성전에 가셔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이야기로, 그리고 다시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막 11:14절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제자들이 들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그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두고 있다가, 말씀하신 것이 결과로 나타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말하였습니다. “보세요.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베드로는 그 사건을 통하여 자기들에게 보여주려고 하신 것을 보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베드로의 말에 예수님은 정상적인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대화의 화두를 다른 곳으로 돌리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라고요.

   

예수님께서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주신 교훈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라,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라.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교훈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기들의 배를 채우는 데 급급한 현실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렇게 보면 무화과 열매는, 실제 열매라기보다 그들이 맺고 있는 신앙적 열매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한 심판은 바로 신앙의 열매 없는 이스라엘을 향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신앙공동체 안에 있어야 할 것과 없어야 할 것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예배를 더 잘 드릴 수 있도록 편리하게 해준다는 이유로 성전에서, 이방인의 뜰에서 환전하고, 비둘기를 팔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더 나은 제사를, 더 나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는 세계 각지에서 온 이방인 예배 자들을 더 이상 예배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진실하지 못한 종교적 행위 때문에, 하나님의 참뜻을 버린 행위 때문에, 외모는 화려하고 무언가 많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정 있어야 할 열매는 없었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아래에 더 짙고 넓은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의 진실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참뜻을 버린 종교적 행위가 많으면 많을수록 어두운 그림자만 커질 뿐입니다. 율법주의적인 우리의 행위, 하나님의 참사랑을 온전히 담지 못한 우리의 종교적 행위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보려고 하는 믿음의 초보자들의 예배의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제 우리를 가리켜 새로운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무화과나무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성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성전에서 진실하지 못한 믿음 없는 종교적 행위가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참뜻을 가리는 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과 관습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그늘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전에 가득 채워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예배와 기도와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나무에 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리는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의 열매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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