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예수님의 가장 큰 마지막 선물

새벽지기1 2016. 5. 7. 06:56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묘 앞에는 생전에 직접 쓴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이라는 제목의 청동 명판이 세워져 있는데, 자신의 업적을 열거하면서 몇 가지 항목은 “이는 현재까지 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은 명예다.”, “이후로는 나의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등의 더 할 수 없는 자화자찬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아무리 황제라도 자화자찬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당시는 별 볼 일이 없는 평민들도 조상의 업적을 들춰내서라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명예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 ‘겸손’은 굴욕과 비굴이나 초라함을 뜻했고, 아주 드물게 보는 겸손 비슷한 경우도 강자의 관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마지막 사랑’입니다. 마지막 사랑치고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일은 알고 보면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겸손한 섬김’이 ‘최고의 덕목’이자 ‘최상의 복 받는 비결’로서, 아비규환의 어두운 인간 세상에 아침 해처럼 그 찬란한 빛을 발하며 높이 솟아 오른 것입니다. .

   

명예가 최고의 덕목인 세상, 누구도 피하려 하는 굴종과 비굴과 초라함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최고의 표적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쫓아가고 있습니까?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요 13: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인류에게 주신 큰 사랑의 마지막 선물이 곧 ‘겸손한 섬김’입니다. 선물은 받아서 사용할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은 겸손과 섬김을 ‘당위’가 아닌 ‘향유’로 말씀하신 것임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조선의 간디로 추앙받는 조만식 선생은 집안이 가난하여 어린 시절부터 남의 가게 사환으로 살았습니다. 주인은 어느 날 열심히 여러 개의 요강을 닦는 소년 조만식의 모습을 발견하고 눈 여겨 보았습니다. 그의 성실한 태도는 한결 같았습니다. 주인은 소년 조만식을 일본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그는 귀국하여 평양 오산학교 교사를 거쳐 33살에 교장이 되어 수많은 기독 애국 청년들을 키워냈고, 제자와 백성들을 버릴 수 없다며 공산 치하의 북한에 끝까지 남아 순교당합니다.

  

“신발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면 그 일에서 최고가 되십시오. 그리하면 누구도 당신을 심부름꾼으로 놔두지 않습니다.” 고바야시 이치조의 말입니다. 마야 엔젤루“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이미 당신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리더란 무엇인가?’의 저자 조셉 자보르스키로버트 그린리의 ‘리더로서의 하인이라는 책만이 진정한 리더십의 진수라고 말합니다. 탁월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책이 수천을 헤아리는 데, ‘서번트 리더’만이 진정한 리더라는 것입니다. 로버트 그린리가 주창한 ‘서번트 리더십’은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최고의 리더십이며,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겸손과 섬김’, ‘서번트 리더십’은 단순히 덕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삶 전 분야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실질적인 파워입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그가 말합니다. “좋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키운 리더들을 5년 동안 조사하고 우리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화성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나서지 않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데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개인적인 겸손함과 단단한 의지가 융합되어 있었다. 이들은 시저보다 소크라테스와 비슷했다.” “시저보다 예수님과 비슷했다.”라고 해야 더 옳을 것입니다. 그들이 경영하는 기업은 평균보다 7.39배의 실적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은, 종교가 아닌,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들을 감동시켜 현세적인 복을 얻으려는 헛된 몸부림을 종식시키고, 굿으로 전락한 예배와 주문으로 변질된 기도의 참 의미를 회복시켜,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유롭고 보람차고 풍성하게 살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가장 큰 선물인 겸손과 섬김은 그 어떤 종교 행위보다 큰 의미를 갖습니다. 종교 행위를 폄하하자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겸손한 섬김에 하나님 아버지와의 깊은 대화인 기도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견인 예배가 더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입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변화들은 바로 이 힘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제자 중 유일하게 천수를 누렸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구십 세 중반의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단 위에 눕다시피 하며 오직 한 말씀만을 전했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라고…그의 마지막 서신 중 하나인 요한 1서에서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느니라.”(요1 4:12) 사랑의 사도 요한은 마침내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요 13:7)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지위와 자원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귀한 선택입니다. 예수님의 최고의 선물인 겸손과 섬김을 일상에서 온 몸으로 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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