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성령을 치유, 환상, 예언, 투시, 통변, 진동과 같은 ‘희한한 종교적 현상’이라고만 생각하고, 성령을 받으면 방언이라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루저’ 취급을 당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기 쉬운데, 이는 너무나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유사한 일들이 오늘날 교회에 부쩍 많아졌습니다.
성령론의 대가로 알려진 A.W. 핑크(1886-1952)는 성령의 은사는 초대 교회 당시에만 나타난 것이며, 오늘날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은 더 이상 은사 시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대단히 일리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특히 고린도전서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 자세히 정리를 했는데, 고린도 교회는 교회의 모든 말썽과 문제가 한꺼번에 나타난 골치 아픈 교회였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사도 바울이 그 교회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고린도전후서는 AD.53-55년경의 문서로, 아직 복음서가 기록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즉 기준이 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 말씀이 없던 때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성령의 은사들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보내셨고, 성경이 정립된 이후로는 ‘오직 성경만’이 기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은 기름 부음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특권의식에 빠져 기독교와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소리입니다. 핑크는, 성령의 은사의 왜곡은 무절제한 방종을 조장하여, 영혼들을 미혹하고 파멸시키는 사탄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보혜사’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곁’을 의미하는 ‘파라’와 ‘변호자, 위로자, 중보자’를 뜻하는 ‘클레토스’가 합해진 단어)를 번역한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존해주시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또 다른 보혜사’라면 원래 보혜사는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성령님의 하시는 일은 똑같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오고 오는 그리스도인들이 계승하도록 성령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은 ‘진리의 영’입니다. 이 이름은, 성령님의 가장 우선이 되는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굉장하고 희한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시는 것이 아닌 진리를 제대로 깨닫게 하시는 것임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성령을 받는 것을 방언이나 환상이나 전율과 같은 특이한 체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확답을 주저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또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진리로 믿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비록 특별한 체험은 없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 성령의 ‘인 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절대로 그렇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고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영이시므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십니다. 온 우주에 가득하시면서 특별히 내 안에 거하십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 거하십니다. 세상에서는 큰 것이 작은 것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크신 분이 먼지 같은 내안에 거하십니다. 이처럼 큰 기적, 이처럼 감사한 일은 없습니다. 이를 아는 참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도, 견뎌내고 이겨내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완전한 속죄가 행해졌고 완전한 의가 생겼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내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성화 사역이 없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은 저기에 있고, 죄를 반복하는 나는 여기에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문을 여셨고 성령님은 나로 그 구원의 문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이름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먼저 진리의 영과 내주하시는 영입니다. 죄를 조명하시고 확신시키시는 영, 믿음을 주시는 영, 증거하시는 영, 중생시키시는 영, 인도하고 이끄시는 영, 가르치시는 영,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는 영, 변화시키시는 영, 위로하시고 보호하시는 영, 도우시고 간구하시고 중보하시는 영, 인치시고 보증하시는 영, 마침내 열매 맺게 하시는 영입니다. 이 모든 명칭들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구원은 허사가 됩니다.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령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 받기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허락하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은 마침내 나로 하여금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이는 생각나는 대로 적은 단순한 나열이 아닙니다. 먼저,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처사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하나님과 영원한 화평을 누립니다. 다음으로,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타인에 대한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속이 상해도 오래 참습니다. 이웃에 대해 자비를 베풀고 선을 행합니다. 마지막으로,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내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맡은 일을 충실하게 행합니다.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온유와 자신을 잘 다스리는 절제의 삶을 살아갑니다.
성령님은 기이한 종교적 능력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 모든 이들이 사랑하며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능력으로 내게 임합니다. 자연히 내 삶은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 나와 남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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