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입성한지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요 12:20) 헬라인 몇몇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헬라인들이 십자가 처형을 앞둔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것은 단순히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이 자신을 만나기 원한다는 말을 들으신 후에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단지 유대인의 구원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을 가두고 있는 모든 고정 관념과 편견을 깨뜨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내 삶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이유석 씨는 요리사입니다. 프랑스 요리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갔지만 집안의 도움을 받을 처지도 못돼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당장 일을 구해야 했습니다. 요리를 공부한 적도 없고 프랑스어도 못하는 동양인에게 어떤 레스토랑도 인턴 자리를 내줄 리 없습니다. 그는 수없이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장 가고 싶은 레스토랑은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렁브루아지’인데 요리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인턴을 뽑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는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들고 무조건 렁브루아지로 갔습니다. 30분간 서성거리는데 그때 마침 유명한 주방장 베르나르 파코 씨가 문밖으로 나왔습니다. 인사를 하고는 준비한 서류를 건넸습니다. 잠시 이력서를 훑어본 그는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갔지만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며 한 달에 두 번씩 찾아갔지만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열 세 번 째 갔을 때 영업 방해라며 경찰을 불렀습니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며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에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열네 번째 찾아간 그는 파코 씨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5분간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에 불쾌한 표정의 파코 씨는 잠자코 있었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도 당신이 거절한다면, 저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최고의 프랑스 요리를 맛볼 기회가 없을 것이며, 한국에는 엉터리 프랑스 요리가 판을 칠 것입니다. 당신은 한 명의 개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게 아니라, 한 나라에 진짜 프랑스 요리를 전파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말에 파코 씨는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다시 훑어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여덟시까지 출근해.” 그렇게 해서 이유석 씨는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를 가장 잘 하는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유석씨가 행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과 수치감을 죽이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뤘고,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다시 수많은 것을 죽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종교와 율법으로 바꿔놓고 사람들을 가둬놓은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은 한 알의 밀알과 같은 별 볼일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한 알 한 알 고유한 이름을 가진,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 독특한 개성의 씨앗입니다. 그런데 그 씨앗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게서 죽여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욱하는 성질머리, 게으름, 대충 대충 넘어가는 아마추어 기질, 책임 전가하는 나쁜 버릇, 빡빡 우기는 황소고집, 우쭐거림, 터무니없는 교만과 편견, 차별의식, 걱정과 근심, 잔머리 굴리기와 의심, 탐욕과 이기심 등등,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5) 다른 사람들과의 충돌과 갈등이 일어날 때,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얼른 멈추고 내 안에서 죽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곧 한 알의 밀알로서 자신을 죽이는 사람이며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열매가 더욱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로서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것은 우리 모두, 즉 나와 다른 사람들의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위해서입니다.
유엔이 선정한 올해의 교육 기관 ‘약속의 연필’이라는 재단이 있습니다. 설립자는 애덤 브라운. 대학시절 인도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한 거지 소년을 만났습니다. 그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갖고 싶은 게 뭐니?” “연필이요.” “정말?” 그렇게 소박한 걸 갖고 싶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얼른 볼펜을 꺼내 아이에게 건넸고, 순간 아의의 얼굴은 보석이라도 보는 듯 환하게 빛났습니다.
애덤 브라운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때 그가 가진 돈은 25달러가 전부였습니다. SNS를 통한 홍보로 시작, 가면무도회 등을 열고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전 세계에 221개의 학교를 세워 3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저는 24살이었습니다. 어린 나이는 약점이 아니라 사실은 엄청난 장점입니다. 사소한 결정은 머리로, 큰 결정은 가슴으로 내리면 됩니다.”
이유석 씨나 애덤 브라운이 그리스도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갔던 방향은 예수님의 방향과 같습니다. 자신만의 꿈을 위해 자신을 끝없이 죽이며 준비하고 도전하십시오. 나아가 이웃에게 덕을 끼치기 위해 사십시오. 이것이 내가 살고 내 삶이 풍성해지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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