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삶

새벽지기1 2016. 5. 25. 06:56


빌립보서가 기록되던 당시 바울의 상황은 옥중에서 자유롭게 서신을 작성할 수 없었습니다. 살을 파고드는 쇠사슬과 불편하고 불결한 감옥 환경, 간수들의 거친 언어와 학대가 그를 압도했습니다. 하지만 역동하는 진리로 말미암아 비록 육신은 고달픔 가운데 놓였을지라도 영혼은 처한 환경을 초월하여 자유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유함과 기쁨, 평안을 누리는 가운데 바울은, 이미 복음을 받아들였고 형제 중 상당수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거룩하게 구별되어진 성도 그 자체로만 머물지 말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영역으로 나아가야 함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살아있는 동안 말씀 묵상과 기도, 찬양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삶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즉, 주의 말씀 듣고서 행하지 않는 다면, 모래 위에 터 닦고 집을 짓는 것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완벽하게 전하는 길은 성도의 삶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진 핍박과 죽음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지 않았으며, 그러한 삶을 통해 그들을 압제하던 이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렇게 복음이 퍼져나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모르거나 부인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믿고, 체험하고, 누리고 있는 구세주의 복된 소식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임하였느니라”는 메시지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순결하며, 도덕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일지라도 모두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도무지 소망이 없음을 깨달은 이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지고, 그 복음을 받고 난 다음에는 그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질문은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살 수 있는가?”입니다. 각각의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사는 것이 말씀대로 사는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 세세하게 가이드라인을 그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아는 것에서부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즉,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깨달은 후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냥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에만 머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달란트를 부여한 주인은 받은 자들이 그것을 활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르심에 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로 삼아 그리스도 복음의 은혜가 흘러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이 말씀은 그냥 성도로서의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한 일을 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진정 살아계신 분이시며 그 분 외에는 소망이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삶으로 드러내는 영역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주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우리가 어찌 그 사실에 감격만 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바 된 이 복된 소식을 혼자 간직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삶으로 증거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꼭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경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 또한 여러 모양의 핍박을 받습니다. 은근한 따돌림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독교라는 폄하까지 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바처럼 세상이 자신을 미워한 것처럼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의 삶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결과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았으며 그렇게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는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믿음의 선진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으며, 그 연결 고리는 우리를 통해서 후대에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믿으신다면 우리로 하여금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짓누르는 모든 것에 담대히 맞서시기 바랍니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할 때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원한 소망을 건드릴 수 없기에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맞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도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고난이 곧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할 수 있으며, 영원한 소망을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셨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이루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