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마음을 여는 것.
먼저 눈길을 주는 것.
먼저 손을 잡는 것.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
먼저 사랑을 보내는 것.
먼저 희망을 말하는 것.
「기회」 - 정용철 시인의 시
이 시에서 핵심어는 ‘먼저’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눈길을 주고, 손을 내밀고,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보내고, 희망을 말하면, ‘기회’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한동안 가톨릭에서 ‘내 탓이오’운동을 전개한 바 있습니다. 이 시대의 모든 타락과 부패가 사실은 내가 바로 살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나온 고백 운동입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일이 잘못 돌아갈 때, 일단 ‘습관처럼’ ‘내 탓’으로 돌리고 나를 가다듬어 보기로 합시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도 기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나는 어느새 세파에 휘둘리지 않는 담담하고, 단단하고,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져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고, 또 이 시대가 바라고 원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어느 시대나 환난과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들을 없애 주시겠다거나 우리더러 이기라 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담대함의 근거는 내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는데 있습니다.(요 16:33) 헬라어 ‘니카오’(이기다)의 명사형 ‘니케’는 ‘정복, 승리’외에도 ‘성공의 수단’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승리는 ‘우격다짐에 의한 우쭐대는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과 함께 임하는 깨끗하고 따뜻한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며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에 대한 최강의 조치를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최강의 조치는 바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입니다.(요 14:26-27)
성령님의 가르침은 첫째, ‘단세포의 지식’이 아니라 ‘총체적인 지식’입니다. ‘단세포적인 지식’이라 함은 그저 머리에만 작용하는 지식을 말합니다. 오늘날 IT 기술로 인하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수준 높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누구나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의 지, 정, 의, 전 분야에 작용하여 우리를 근본부터 변화시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선하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아가토스’는 그저 ‘착하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다’, ‘풍성하다’는 뜻이 더 강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변화시켜 생산적인 좋은 일을 하게 하여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영성은, 현실에 뿌리박은 살아있는 ‘생명의 영성’입니다.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진다고 한탄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아주 천천히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있으며, 힘 있는 자들의 횡포는 최후의 저항일 뿐입니다. 현재의 혼란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시대가 이미 왔는데 아직 새 시대를 이끄는 세력이 약하거나, 새 시대에 완강히 저항하는 수구세력들 때문입니다. 그들을 탓하며 시간과 심령을 어둡게 만들지 말고(시 37;2) 성령을 받아 새로운 꿈과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고 행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당해야 할 ‘신나는 책임’입니다. 그 일을 하노라면 기회가 사방에서 몰려들고 미래의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둘째, 영혼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스캇 펙 박사가 쓴 책 ‘거짓의 사람들’에는, 위장이 너무나 교묘하고 완벽하여 가족들까지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구체적인 예화가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악한 거짓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한사코 피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그 자체로서 미덕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을 겸손하게 변화시키시는 것은, 아직 갈 길이 멀었으니 더욱 열심히 배우고 교정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숙제는 아닙니다. 성장은 기쁨이며, 즐거움이며, 보람입니다. 그렇게 자라나는 동안 하나님의 신비를 만끽합니다. 가다가 지치면 잠시 쉬면됩니다. 쉬는 동안에도 세상을 이미 이기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평안합니다.
셋째, 세상 것들의 무가치함을 드러냅니다.(엡 3:7-8) 그 이유는, 우리를 물질과 욕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마침내 예수님의 ‘니케’(승리)와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에 참예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방 땅 그랄 지역에서 살면서 큰 재산이요 생명과 같은 우물을 여러 번, 그것도 맥없이 빼앗긴 이삭은 세상눈으로 보면 무능한 바보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올리고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 때 그랄 땅의 맹주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을 대동하고 또 다시 나타납니다. 화들짝 놀란 이삭 앞에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아비멜렉이 공손히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중략)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 26:28-29)
이삭과 함께 하셨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처사로 겸허히 받으며 거룩한 성장을 이룰 때, 예수님의 승리와 하나님의 평강과 풍성한 복이 우리에게 충만할 것입니다. 오늘의 어려움과 어두움을 기도와 감사와 웃음으로 이기고, 서로 격려하며 즐겁게 사십시오
'좋은 말씀 > 신우인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 심령 중심에 거하시는 성령 (0) | 2016.06.04 |
|---|---|
| 나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 (0) | 2016.06.02 |
| 거짓 위로를 폐하고 참 위로가 되시는 성령 (0) | 2016.05.30 |
|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는 성령 (0) | 2016.05.29 |
| 확신케 하시는 성령 (0) | 2016.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