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신앙은 저항이다

새벽지기1 2016. 6. 15. 06:45


십계명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생활을 하게 되던 때에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의 법칙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우리가 버린 계명이 있습니다. 그 계명은 바로 네 번째 계명 곧, 안식일계명입니다. 현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일은 관심 밖의 문제가 된지 오래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마 12:8, 눅 6:5) 주님의 선언에 따르면 우리는 안식일을 버릴 수 없습니다. 주님 말씀대로라면 안식일은 우리의 것입니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어김없이 그 지역의 회당을 찾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 어느 곳에도 안식일을 폐지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사도들도 지켰던 안식일을 왜 우리는 지키지 않는 것일까요?

  

안식일은 히브리어 ‘사바트’(sabbath)‘쉬다’, ‘멈추다’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에 쉬어야 하는 이유는 창세 때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셨기 때문입니다.(출 20:11)

  

창조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고대 랍비들이 창세기를 해석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일곱째 날에도 또 하나의 창조 행위가 있었다. 엿새 동안 창조가 이루어진 뒤에 우주에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메누하(menuha), 즉 안식이었다. 하나님은 휴식, 즉 메누하를 일곱째 날에 만드셨다.” 메누하는 노동과 수고를 그만두는 것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는 평온, 고요, 평화, 그리고 휴식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구약성경에서 거룩, 카도쉬(qadosh)라는 말이 최초로 적용된 곳은 바로 안식일입니다. 창세기에서는 거룩이라는 말을 안식일에만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셨다는 것은 단순한 휴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쉼과 그침은 복과 거룩, 샬롬이라는 창조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엄청난 역사인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창조의 마지막 퍼즐이 시간이라는 것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6일 동안, 공간적인 세계에서 살면서 항상 공간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공간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안식일은 공간적인 토대에서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멈추고, 벗어나는 시간입니다.

  

공간을 지배하고, 공간의 사물을 획득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가 되면 우리의 삶은 망가지고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공간 종교의 우상인 물질의 신, 풍요의 신들은 우리에게서 만족을 앗아가고 쉼을 빼앗아 갑니다. 물질의 신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 풍요롭고 미래가 보장된다고 우리를 압박합니다. 이러한 공간종교의 지배 아래에서는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인간을 생산의 수단으로 사물화하고 비인격화 합니다. 생산이 목적인 생산지상주의의 강요가 연약한 자들의 쉼과 휴식을 빼앗아가고, 약자들을 착취합니다.

  

고대에 공간적 종교의 최첨단이 바로 애굽이라는 나라입니다. 그들은 공간 안에 거대하고 웅장한 신전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측량하고, 돌을 깎고, 돌을 쌓았습니다. 거대한 피라밋을 만들고, 석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공간 종교의 최첨단 속에서 살았던 430년 중, 무려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던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만족을 모르는 공간종교의 우두머리 파라오의 압정 밑에서 쉴 새 없이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평생을 신전과 무덤을 만들던 파라오의 물질숭배 신관의 지배 아래,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로서 평생토록 고단한 인생을 살다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안식은 죽음을 맞이할 때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민족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삶의 원칙 가운데 하나로 안식일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하나님은 그들에게 안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선물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선물은 엄청나게 강한 지배력, 막강한 권력을 가진 파라오에게 맞서 싸워, 저항하여 얻은 것입니다.

  

2천 년 전 유대 사회의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안식일 법을 철저하게 지켰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책망 받은 이유는 안식일을 안 지켜서가 아니라 율법의 정신, 율법의 참 목적을 구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계명에서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알고 안식일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6일 동안의 시간과는 구별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멈춤을 통하여 하나님이 거룩하게 만드신 안식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가 멈출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애굽의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주지 않았던 것처럼 생산과 성공지상주의의 우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애굽의 파라오처럼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이 강요에, 이 시대의 사람들은 쉴 수가 없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더 많이 일하라고 강요하는 생산지상주의의 힘 앞에 저항해야 합니다. 또한,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지 못하면 패배하게 된다고 두려움을 심는 성공지상주의의 힘 앞에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세상의 사물과 물질에 의지하여, 생산하고 힘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였던 6일 동안의 그 모든 행동을 멈추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겠습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최소한 안식일만이라도 기술문명으로부터 독립하여 사는 것, 모든 갈등을 멈추는 날로 사는 것, 평화를 이루는 날로 사는 것, 세계 최고의 우상인 돈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맹세하는 날로 지키는 것, 최소한 안식일만큼이라도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르는 날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스템에 저항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멈추어 서서, 저항하고, 비록 세상의 가치를 내려놓는 것이 두려울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샬롬의 거룩한 옷자락을 붙드는 순간 우리는 놀라운 천국의 향연에 동참하게 됩니다. 진정한 안식을 통하여 우리는 새 힘을 얻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회복되는 창조의 역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놀라운 천국의 향연으로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