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첫째 주일은 세계교회가 함께 지키는 세계성찬주일입니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가지신 유월절 만찬의 식탁을 통하여 제정된 성례전(聖禮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사건이 성찬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체화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식탁에 둘러앉아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 우리는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에 참여하게 됩니다.
성찬의 식탁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유월절 식사와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 앞에서 함께 나눈 계약식사와 관계가 있고, 또한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를 먹이신 일이나 부활 후에 제자들과 나눈 식탁,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어린양의 잔치에까지 연결이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중요한 사건들이 밥상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구약에 나타난 두 개의 공동식사는 이스라엘 공동체로 하여금
①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계약 관계를 재확인하고,
②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공동체가 그들 가운데 실현됨을 경험하며,
③ 그들이 경험한 새로운 공동체가 역사 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리라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게 하였습니다.
또한 신약에서 예수님의 식탁은
① 사죄와 용서 ② 공동체 상호간의 섬김 ③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로 특징 지워집니다. 호신대 김동선교수는 “주의 만찬은 교회와 교회가 이루어야 할 새로운 공동체의 요약일 뿐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요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채택한 BEM 문서(1982년 페루의 리마에서 WCC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50년 고심 끝에 작성한 문서로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의 첫 머리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에 나타난 성찬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찬은 “교회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하여 드리는 찬양의 대제사”(4)입니다. “성찬은 창조와 구원과 성화를 통해 이루어진 모든 것에 대하여,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세계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모든 일에 대하여, 또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완성하심으로써 이루실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커다란 감사를 드리는 것”(3)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행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창조와 구원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되어 하나님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힘껏 감사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찬을 그리스도의 고난만을 기념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무겁게 행하여 왔습니다만, 성찬은 감사와 기쁨의 식탁이며, 아름다운 찬양과 정성으로 준비된 우리의 예물을 아울러 드림으로 맞는 축제의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성찬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anamnesis)”(5)입니다. 기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 구원의 사건을 오늘에 재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찬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기념은 그 사건을 통하여 성취된 구원을 오늘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찬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그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찬에서 말하는 기념에 대한 성경의 생각은 성찬이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예전으로써 거행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의 현재적 효과를 가리킵니다.”(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모든 피조물을 위하여 그가 이루신 모든 일들과 함께 이 기념 속에 임재하며 우리와 친히 교제를 나누신다”(6)고 하므로 ‘기념’과 ‘임재’를 분리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친히 그와의 교제(communion)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성찬을 성찬 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찬 때 우리에게 실제로 임재하도록 하시며, 성찬 제정 때 하신 말씀에 담긴 약속을 성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성찬을 가능케 하시며, 성찬식이 계속해서 유효하도록 만드시는 무한한 사랑의 힘”(14)이 되십니다. 성찬 사건의 근원이 되시며 궁극적으로 성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성찬의 중심인 성육신 하신 아들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로 체험케 하시는 성령의 힘, 결국 성찬 안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를 동시에 체험하게 됩니다.
넷째로, 성찬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자리입니다. “교회의 삶을 양육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성찬적 사귐은 동시에 교회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서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백성 공동체가 충분히 드러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성찬을 통해서입니다”(19). “성찬 의식은 하나님의 한 가족 안에서 형제자매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들 간의 화해와 동참을 요구하며, 사회․경제․정치적 삶 속에서 합당한 관계를 추구하도록 촉구하는 끊임없는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동참할 때 모든 종류의 부정의․인종차별․인종분리주의․자유의 결핍이 근본적으로 도전 받게 된다”(20)고 하였습니다. 성찬을 통한 성도의 교제는, 이 세계 속에 깃들인 모든 악과 투쟁하여 마침내 모든 세계민이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성찬은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이며, 이 땅에 나타난 그 나라의 징표들에 대해 감사를 드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임해 오는 하나님나라를 기쁜 마음으로 기념하고 또 고대하는 축제”입니다(22). 성찬은 완전한 코이노니아가 회복된 미래의 공동체를 미리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BEM 문서에 나타난 성찬의 코이노니아는 세 방향으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 둘째는 성도간의 코이노니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계와의 코이노니아가 그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는 성부께 대한 감사의 제사(sacrifice)와 성자에 대한 기념(anamnesis)과 성령의 초대(epiklisis)로 이루어지며, 성도간의 코이노니아는 교회 일치로 발전하여야 할 것을 강조하고, 세계와의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선교를 통하여 실현되어야 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세계와 우리 사회 속에 깃들인 모든 불의를 대적하며, 세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여야 하겠습니다. 성찬은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자리이며, 그것을 미리 맛보는 자리입니다. 성찬의 이 깊은 뜻을 이해할 때 우리는 더 확실한 신앙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역사를 이 땅 위에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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