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천하만물을 만드셨고, 만물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계십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창 1:2) 이는 하나님의 진단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아니한 세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계의 특징은 첫째 ‘혼돈’입니다. 비본질이 본질을 삼키고, 비핵심이 핵심을 무너뜨리는 경우를 도처에서 봅니다. 갈수록 더 혼돈은 깊어집니다. 둘째 ‘공허’입니다. 부자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노트를 한 권 주고는 명령을 내립니다. “여기에 적혀 있는 것을 커다란 돌에 새기거라.” 노트에 적혀 있는 것은 그가 그동안 틈틈이 쓴 시들이었습니다. 그는 부자였지만 남은 것은 오직 ‘공허’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흔적이라도 돌비석에 새겨 남기기를 원한 것입니다. 셋째 ‘흑암’입니다. 인간이 이룩한 것으로, 불투명하고 불안하며 두려운 미래를 예측해보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미래는 더 깊은 흑암에 잠겨 버렸습니다. ‘의미 요법’(The Logo Therapy)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런 현상을 ‘실존적인 공허’라고 불렀습니다. 그 특징은 권태와 불안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존적 공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종교입니다. 모든 시대와 인종과 문화를 망라하여 종교가 있고, 각종의 신을 섬깁니다. 인류 최초의 신은 태양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양신은 ‘번영의 신’의 다른 이름입니다. 혼돈과 공허, 흑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태양신들을 섬깁니다. 그러나 태양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태양을 섬기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 태양이 인간을 도와주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피조물들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을 섬길 때에 부분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상에 의해서 휘둘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두고 사도 바울은 한 마디로 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엡 5:8) 어둠은 곧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운행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라하프’는 ‘알을 품다’는 뜻도 있습니다.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알을 품습니다. 알을 품는다는 것은 분명한 목적과 의지가 있는 가장 거룩하고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세상에 휘둘리는 우리들을 새로운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품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고 계심을 믿고, 모든 근심과 걱정과 헛된 것의 가지를 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인도를 천천히 따라가면 됩니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엡 5:13)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휘둘리는 우리들의 모습은 스스로 보기에도 가련하고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을 보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빛이며, 그 빛을 통해 가련한 내 모습을 보고 인정할 때 나는 빛으로, 빛의 자녀로 다시 태어납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3)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해결책은 빛의 창조입니다. 이 빛은 과연 무엇일까요? 창조주 여호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빛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일거수일투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요 1:1-4)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면 비례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내게서 나타나고, 충만한 은혜와 진리로 인하여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저절로 물러나 버립니다.
필립 얀시의 책 “내 눈이 주의 영광을 보네”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넬슨 만델라가 27년 동안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진리와 화해 위원회’를 만듭니다. 이 위원회의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백인 경찰이나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고소자들 앞에 서서 범행을 털어놓고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인정하면 그 범죄로 인한 재판이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대가 엄청났지만 결국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반 드 브렉이라는 백인 경찰관은 청문회에서 자신이 저지른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십 팔세의 흑인 소년을 총으로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하여 그 시신을 불에 태웠습니다. 8년 후, 다시 소년의 아버지를 체포하여 장작더미 위에 묶어 놓고 화형을 시켰습니다. 더 끔찍스러운 일은 그 아내로 하여금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부인에게 판사가 물었습니다. “반 드 브렉 씨에게 무엇을 원합니까?”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그가 남편을 태운 장소에서 그 재를 모아줬으면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머리를 숙인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다음 그녀는 한 가지 요구를 추가하였습니다. “반 드 브렉 씨는 제 가족을 모두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아직도 그에게 줄 사랑이 남아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나는 그가 우리 집에 와서 하루 동안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제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나는 반 드 브렉 씨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나는 내가 정말 용서했다는 걸 그가 알 수 있도록 그를 안아 주고 싶습니다.” 노부인이 증인석에서 걸어가는 동안 누군가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반 드 브렉 씨는 그 찬송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그 부인이 처했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그 부인이 보인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충만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갈 때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질서와 충만과 광명으로 바뀝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이미 우리들은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배운 바를 살아내십시오. 그래서 삶에서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전하는 빛의 전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말씀 > 신우인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밝고 따뜻하고 새롭게 (0) | 2016.07.14 |
|---|---|
| 하나님이 이르시되 (0) | 2016.07.12 |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0) | 2016.07.07 |
|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0) | 2016.07.03 |
| 오늘 교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 (0) | 2016.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