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

새벽지기1 2016. 7. 18. 07:0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생명이나 재능, 건강 또는 미모일까요?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육(肉,body)과 혼(魂,soul)과 영(靈,spirit)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여기서 "생기"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하는데 바로 성령을 말합니다. 사람은 흙으로부터 유래한 ‘육적 생명’과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적 생명’이 결합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사람을 생령(生靈)‘살아있는 영’(living spirit)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원래 이름이며,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으뜸 되는 의미는 바로 인간은 ‘살아있는 영’이라는 사실입니다. 영이 살아있어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가 됩니다. 타락이란 바로 이 영을 상실했음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공중 권세를 잡은 자는 곧 사탄을 뜻하며 그의 추종자들이 곧 불순종의 아들들인데, 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엡 2:3)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은 하나님과 교감하는 안테나입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장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4,16)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태초부터 지금까지 메시지를 보내고 계십니다. 그 내용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랑하는 그 분의 자녀”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듣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수많은 전파들이 오고가고 있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젼 없이는 그 전파의 존재를 알 수 없듯이 우리 안에 영이 없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메시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영적 안테나 성능은 어떻습니까? 제대로 잘 작동하고 있습니까?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탄이 찾아와서 흥정을 합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내게 파십시오.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주겠습니다.” 사나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봅니다. 아무 쓸모도 없는 그림자…그래서 냉큼 사탄에게 그림자를 팔았고, 그 사나이는 그 대가로 부와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자가 없는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립니다. 그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집안 전체에 가장 밝은 불을 켜 놓고 사람들을 부릅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두꺼운 커튼을 드리운 깜깜한 방에서 쓸쓸히 죽었습니다. 그 하찮아 보이는 그림자가 없어도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이 믿어졌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영적 안테나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미래’가 아니라 이미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은, 내 생각이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이 땅에 살지만, 이미 하늘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하나님의 포이에마(작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이 말씀은 창세기 1;26-28의 말씀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생육하고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예비하사”라는 말씀은 “태초부터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선하다’에 해당되는 ‘아가토스’는 이치에 맞는, 착한, 의로운 이라는 뜻 외에도 ‘풍성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악이 창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끝내는 멸망합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8,13,15) 참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잘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쳐 자신의 생각이나 소원을 관철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번제’란 자신을 불에 태워 온전히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기도’를 뜻하는 히브리어 ‘테필라’는 ‘판단’을 뜻하는 ‘팔랄’에서 왔습니다. 판단은 ‘내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즉 기도란 내 뜻을 관철시키려는 종교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을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죽음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마침내 영화로운 존재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두고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9)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놓으신 생명과 번영의 길을 열심히 가십시다. 최후 승리를 믿으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열심으로 반드시 완성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