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사탄에게 놀아나지 않기

새벽지기1 2016. 7. 29. 07:54


성경에서 뱀이라 부르는 사탄은 정말 존재할까요, 아니면 허구의 존재일까요? 사탄에 대한 대단히 잘못된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 사탄의 존재를 부인하는 태도입니다. “그건 허구의 존재야. 21 세기에 무슨 사탄이니 귀신이니 그런 소릴 해?” 그렇게 무관심하면 사탄은 마음 놓고 활개를 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놀아납니다. 사탄은 인간보다 훨씬 더 간교한 존재입니다.

둘째, 사탄이나 귀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입니다. “그런 존재가 정말 있는 것 같아.” 사주팔자, 점괘, 무당, 점쟁이, 오늘의 운세, 부적, 별점 타로 점 등등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신봉하고 두려움에 삶이 위축됩니다. 제 발로 사탄의 수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스캇 펙 박사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나머지 생애를 악을 규명하고 대처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성경은 사탄의 기원에 대하여서 아주 간단하게 언급할 뿐입니다. 사탄의 몇 가지 명칭과 행태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탄에 대한 바른 태도사탄의 존재를 확실히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과도한 관심을 경계합니다.

 

사탄의 의도는 끝도 없이 자신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발아래 두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파괴하려 합니다. 스캇 펙 박사의 증언에서 사탄을 ‘그것’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탄은 비존재(非存在, Non-Being)라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비존재란, 사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절대로 사람에게 직접 해를 입히지 못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유일한 힘은 거짓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나타납니다. 그러한 사탄의 존재를 예수님께서 한 마디로 ‘거짓의 아비’(요 8:44)라 하십니다.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죽을까 하노라”는 사람의 말로 바뀌자마자 사탄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이브는 사탄의 하수로 전락합니다. 사탄은 이브를 한층 더 부추깁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하나님께서 그토록 금하셨던 과일을 따먹고 맙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역어 치마를 하였더라.”(창 3:7) 선악과를 따먹자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탄의 말대로 실제로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탄의 말이 옳다는 것입니까? 영어에서 seemingly라는 말이 있습니다. seemingly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선악과가 그랬습니다. 먹음직하게 보였고 보암직하게 보였고 지혜롭게 할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탄의 첫 번째 목표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적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각자의 삶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혼돈(混沌)입니다. 서로 다 하나님이니까 절대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혜와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 노릇을 하는데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행동하며 사탄의 교묘한 조종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사탄의 손아귀에 완전히 장악되어서 놀아나고 있습니다.


사탄의 두 번째 목표는, 겉으로 드러난 가짜에 온 생명과 에너지를 쏟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눈이 밝아 졌습니다. 그 밝아진 눈으로 무엇을 보았습니까? 자신들의 겉모습, 외모, 육체입니다. 외모지상주의는 전혀 근거없는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옭아맵니다. 성형중독과 과도한 다어어트 그리고 명품의 이름을 빌어서 텅 빈 자신을 은폐하며 외모를 돋보이게 만들려고 합니다. 온 나라가 집단적으로 사탄이 가라하는 곳으로 움직입니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들이 겉으로 드러난 가짜를 위해 탕진되는지 경악할 따름입니다.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보여주는 구절이 6절 말씀 후반부에 있습니다.“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것은 죄의 전염성’입니다. 죄가 무서운 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입니다. 영혼이 병든 부모는 자녀도 병들게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죄라고 할지라도, 더 깊은 수렁에 빠져버리는 것이 필연이고 정해진 수순입니다. 심화되는 죄의 심각성을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다는 것은 ‘죄의 은폐를 말합니다. 사탄은 죄지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은폐하도록 부추깁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결코 가릴 수 없음에도 사탄은 가릴 수 있다고 부추깁니다. 그래서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 또 다른 죄를 낳게 합니다.

 

스캇 펙 박사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사탄의 존재목적은 오직 파괴이며 그의 존재 양식은 은폐이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이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언제 권세와 영광을 사탄에게 넘겨줄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 서로 영광을 취할 때입니다. 이런 일들은 인간사에서 너무나 흔한 일입니다. 어떠한 일을 하고나면 사람들은 생색을 냅니다. 주위 사람들이 알아주면 목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때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애써 이룩한 영광이 사탄에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사탄의 궤계를 꿰뚫고 있는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엡 6:12) 우리가 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살아갈 때 사탄에게 넘겨준 권세와 영광을 비로소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향하라 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외모를 치중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속사람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겉 사람을 꾸미고 위장하라고 부추깁니다. 하나님은 영혼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라 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육체의 건강이 전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속으로 가라 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편안함을 추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낮아지라 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높아지라 합니다.

사탄의 말을 따르면 끝내 악한 일을 하다가 사탄과 더불어 무저갱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사탄의 궤계에 놀아나지 않고 마침내 예수님과 더불어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에 거합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나와 함께 내 왕좌에 앉는 것을 허락하리라.”(계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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