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일리와 오해

새벽지기1 2016. 7. 29. 07:46


모든 오해와 편견에는 일리(一理)가 있다. 완전한 앎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하고, 완전한 거짓은 뿌리가 얕아서 쉬 뽑히기 때문에 사람의 앎이란 일리(부분적 진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일리에서 모든 오해와 편견이 발생한다. 물론 일리를 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일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일리를 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있다.

 

사람은 대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게으르다.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해답이 없는 물음의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한다. 하여, 물음을 끌어안고 사는 것보다는 일리에 만족하는 쪽을 택한다. 일단 일리가 있다 싶으면 더 이상 고민하려 하지 않는다. 일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리를 진실의 전부라고 간주하고 일리에 안주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견지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하여, 일단 일리를 진실의 전부라고 간주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일리를 위협하거나 부정하는 또 다른 일리에 대해서는 부정하거나 거부하려는 의지가 발동한다. 자신의 일리를 견지하기 위해 다른 일리를 공격하거나 외면한다. 그러다 보면 일리는 점차 일리 안에 갇히게 되고, 일리 안에 갇힌 일리는 오해와 편견으로 발전하며, 오해와 편견으로 발전한 일리는 결국 진실의 덩어리를 보지 못하게 가로 막는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무수히 일어난다. 일리가 오해와 편견으로 발전하여 진실의 덩어리를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은 무수히 많다. 어쩌면 일리에서 나온 오해와 편견이 우리의 생활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행복, 신앙, 교육, 정치, 경제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에서까지도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사실이다. 일리조차 없는 것에서는 오해와 편견이 나올 수 없다. 일리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수록, 일리에 설득력이 있을수록 일리에 갇힐 가능성이 많고, 오해와 편견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다시 말하지만 일리는 일리로써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일리를 통해서만 전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일리에는 위험성이 있다. 오해와 편견으로 자랄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일리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않은 채 일리에 쉬 안주해왔다. 일리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아왔다. 일리가 낳은 오해와 편견으로 덧칠된 안경으로 세상과 삶을 보아왔다. 세상과 삶에 숨어 있는 진실의 덩어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리를 넘어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일리에 안주하고, 일리를 고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