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갈급한 영혼 (시 42:1-5)

새벽지기1 2016. 6. 23. 14:17

  

지난 주에 20세기의 성자로 불리우는 토저의 전기를 읽었다.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토저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위해 그토록 자주 물러나 그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곤 했다.

그는 신학보다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였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그의 온 관심을 송두리째 사로잡을 만큼 진실하고 역동적인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영혼’, ‘하나님을 향해 불타는 심령’이 되기를 갈망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서는 “하나님을 추구함(The Pursuit of God)”과

“하나님을 바로 알자(The Knowledge of the Holy)"이다.

그는 항상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추구하여 하나님을 바로 안 사람이었다.

 

그는 로이드 존스처럼 신학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으면서도

신학에 정통하였고 능가하였고, 항상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살았다.

로이드 존스와 토저가 만나서 나눈 대화가 있다.

 

토저, “로이든 존스, 당신과 나는 같은 위치에서 영적인 문제에 관해 얘기하고 있소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길을 통해 여기까지 온 것 같소.”(영적으로 통하고 공감했다.)

로이드 존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토저, “당신은 청교도의 길로 왔고 나는 신비주의자의 길로 여기 이르렀다는 말이오”

 

토저가 속해 있던 교단 기독인-선교사 연합회는 한 가지 관행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학교를 안나왔어도 2년 이상 현장 경험을 가진 사람을 사역자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임명을 받았을 때 그가 하나님께 드렸던 서약의 일부분을 함께 나누고 싶다.

 

주님. 주님은 저를 부르셔서 이 어둡고 위기에 처한 시대에 엄위하신 사명을 맡기셨나이다. 저는 제 연약함이나 이 일에 적합하지 못한 저 자신을 한탄하며 시간을 낭비하진 않겠나이다. 

 

주님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한, 주님은 저를 영화롭게 하실 것을 저는 잘 알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득이 되든 실이 되든, 살든 죽든, 남은 생애와 힘을 다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이 지엄한 맹세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맹세가 깨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하나님이 친히 일하실 때니이다.

원수가 주의 목장에 들어와 양들은 찢기고 흩어졌나이다.

양들은 그 삯꾼들에게 속아 이리가 와 죽이고 멸망시키는 중에도

가슴 아픈 충성으로 저들을 따르고 있나이다.

간절히 원하옵기는 제게 원수의 존재를 찾아낼 날카로운 안목을 주옵소서.

제게 볼 줄 아는 지혜와 보는 것을 성실하게 알릴 용기를 주옵소서.

제 음성을 아버지 음성과 같게 하셔서 병든 양들이 그것을 알아듣고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제가 종교적인 서기관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현대의 성직자들의 얼굴에 어둡게 드리워진

타협과 모방과 직업적 타성의 저주에서 저를 구하여 주옵소서.

교회를 크기와 교인 숫자와 걷히는 헌금으로 평가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제가 선지자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흥행업자나 종교 경영자나 군중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내 영혼의 육신적 야망을 고치시고, 인기를 얻으려는 욕망에서 건져 주옵소서.

저를 세상사의 굴레에서 건져 주옵소서.

 

오 하나님, 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저를 기도의 장소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로 하여금 과식과 늦은 수면 등의 습관을 고치도록 도우시고,

자기 훈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게 하옵소서.

 

저는 쉬운 것을 구하지 않겠으며,

제 생애를 안일하게 만들 수도 있는 길에는 아예 눈을 멀게 하겠나이다.

제가 무엇을 받든 그것이 제 영혼을 해롭게 하거나

영적 능력을 약화시키지 않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하늘과 땅의 주님, 이제 저의 남은 생애를 아버지께 바치나이다.

그 생을 길게 하시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성령을 통하여 제게 주의 능력을 부어 주옵소서.

그리하시면 저는 오직 그 능력 안에서 행하며 하나님의 의를 말하겠나이다.

그리고 나서 제가 늙고 지쳐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가 되면

저를 위해 하늘에 자리를 마련하셔서

저로 영원한 영광 중에서 주의 성도들과 함께하게 하옵소서. 아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주를 찾기에 갈급해하는 심령이 잘 표현되어 있다.

우리도 토저와 함께 이러한 서약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 앞에서 사역자와 성도들은 전념해서 하는 일만 다를 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자세는 다를 수가 없다.

 

우리 마음이 왜 흔들리고 불안하며 낙망하는가?

네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그것은 환경 탓도 아니고 원수 탓도 아니다.

우리의 중심이 확고하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요동시킬 수 없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55편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는’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시 52:5-7)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할려고 쫓아다니다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사노라면, 문제들은 끝도 없이 밀려오게 마련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주를 찾지 않는 한,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문제의 늪에서, 회호리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내 자신도 가정도 직장일도 사업도, 그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두지 않으면

그것들이 올무가 되어 나를 흑암과 혼돈으로 몰아갈 날이 오고 만다.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속에 떨어짐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의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사 5:24)

 

‘하나님을 의식하는 영혼’, ‘하나님을 향해 불타는 심령’이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인 처방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영혼이 되는 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바라면서도 나의 길과 나의 일을 고집한다.

나의 성공을 의식하는 영혼이요, 나의 야망을 향해 불타는 심령으로 산다.

바울은 그러한 삶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한다.

 

(빌3:18-20)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하늘의 일은 쳐다보지도 않고, 땅의 일만을 생각하고, 오직 그 영광만을 바란다면,

그가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의 배를 섬기는 것이다.

그 마침은 멸망이 되고 만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면서 문제와 위기가 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왜 하나님의 택한 민족들인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했는가요?

나라 없는 설움을 안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1900년을 살아야 했나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제사는 잘 드렸지만 그들의 마음은 세상에 가 있었고,

풍요와 쾌락의 신 바알과 아세라에게 그들의 마음은 온통 가 있었다.

수많은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선자지들을 옥에 가두고 돌로 쳐죽이고 톱으로 켜 죽였다.

그리고서는 세월이 지나면 그들을 높이고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며 위로 받았다.

 

(사1:2-8)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이 이사야의 유다 백성들에 대한 탄식이 우리의 인생 종말(과정)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백성은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얻어터진 흔적 뿐인데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땅이 황폐하고 성읍들은 불타고 토지는 이방인에게 삼켜졌는데도 깨닫지를 못한다.

포도원의 망대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는데 깨닫지를 못한다.

 

하나님을 향한 내 영혼이, 냉냉하고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그 영혼은 중증에 들어간 것이다.

살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오직 세상 걱정으로만 채워지고,

육신의 일만을 도모하는 사람은 유다민족의 말기 증세에 접어든 것이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롬13:12-14)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우리 교회가 점점 식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다.

몇 사람을 말고서는 첫 사랑의 열기가 다 식어지고, 불이 다 꺼지고 말았다.

모이질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려고 하지 않는다.

 

말씀에 대한 열의가 식어지면 자연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회와도 멀어지게 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 인생, 내 가정을 세우고 싶은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께로 돌아와야 한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 지지 않으면

우리는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어디에 부탁했는가?

(행20:31-32)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이곳에 한가족교회가 온지 벌써 10년째이다.

이 어려운 시절을 우리는 함께 하였다. 오직 주님과 그분의 말씀과 함께 하였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들은 주님과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질려고 하는가?

 

우리가 우리 인생을 부탁하고 맡길 곳은 오직 주님과 주님의 말씀 뿐이다.

그 말씀만이 우리를 든든하게 세워주고, 기업을 얻게 해준다.

교회는 순종하여 이제 기업을 얻게 될 터인데,

순종하여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이 기업을 주실 텐데,

이제 식어짐으로 그 대열에서 낙오된다면,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울 일이다.

 

사울왕은 말씀을 버림으로 영광과 가문을 잃고 말았다.

말씀을 버림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이다.

 

엘리 제사장은 말씀을 멸시하고 무시하다가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고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게 하고 말았다.

 

호세아 선지자의 호소를 듣고 우리가 돌이켜야 한다.

(호6:1-7)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아서 그들은 찢기고 망했다.

형식적인 예배보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인애, 사랑을 원하신다.

형식적인 헌신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이 차거나 뜨겁지 않으면 하나님은 토해내신다고 경고하셨다.(라오디게아교회)

(계3:15-19)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뜨거운 것은 온천수로 쓰였고, 차거운 것은 음료수로 쓰였다.

미지근한 것은 그 어느 용도로도 쓸 수가 없었다.

부요하다고 문제가 없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곤고한 것 가련한 것 가난한 것 눈 먼 것 벌거벗은 것이 너의 실상이다.

불로 연단한 금으로 부요해져야 한다. 성결한 삶으로 수치를 씻어야 하고,

은혜로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바로 보고 회개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한 것이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을 다시 마음 중심에 영접하고 더불어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라.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회개하고 승리하면 보좌에 함께 앉게 해줄 것이다. 왕권의 복을 줄 것이다.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