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1) 우리의 구원의 결과와 목적지는 가나안이고 천국이고 축복과 영광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긴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이르게 하시는 목적이 우리의 성품의 연단에 있다.
연단은 금강석에서 불순물들을 뽑아내듯이 우리의 성품에서 불순물들을 뽑아내는 작업이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는 데는 고난의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공로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받고 거룩한 성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티와 흠들을 뽑아내는 데는
고난과 연단의 인내의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믿음생활이고 교회생활이고 광야생활인 것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5장에서 말씀한다.
“고난과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은
그 고난과 환난이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에서도 말씀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로서 그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그 고난이 무엇을 위한 고난인가요?
그 영광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 거룩하고 흠이 없는 그릇을 만들기 위한 고난이지요.
2) 축복과 영광이 목적이 되면 우리는 기복신앙에 빠지고 만다.
그것이 비전과 목표가 되면 성급하게 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것을 이루는 일이라면 사탄의 유혹과 혼란에도 넙죽 넘어가게 된다.
축복과 영광에 이르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의 성품과 삶의 성결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왜 긴 세월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축복과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가?
먼저는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요.
때가 되었음에도 우리가 성결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흠 없는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고난을 배열하시는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고난을 해결하고 영광을 이루는 일에만 급급해하고 안달하고 몰두한다.
우리가 고난이 많고 문제와 위기가 많아서 축복과 영광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품과 삶에서 성결을 이루지 못해서 축복과 영광이 늦어지는 것이다.
성결 없이 영광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거룩함이 없이는 영광을 이루지 못한다.
흠 없는 거룩함.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축복해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는 하나님 앞에 통하지 않는다.
‘흠없이’란, 외적으로 얼룩진 것이나 주름이나 티가 없는 것을 말한다.
‘거룩’이란, 내적인 성결함의 상태를 말한다.
둘을 합하면, 조금도 모자란 부분이 없고 완전하고 철저한 성결을 의미한다.
모든 국면과 모든 열매들에 있어서 죄가 완전히 없는 것을 말한다.
흠없이란, 책망할 것이 없는 소극적인 면을 말한다. 오점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이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인 빛을 말한다. 절대적인 순결이다.
둘을 합하면, 참으로 순전한 존재, 절대적인 완전함을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수준이 흠없는 거룩함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하신다.
2. 우리가 고난의 광야생활을 통해 흠없는 거룩함을 이루면 축복과 영광은 임하게 돼있다.
아브라함의 복도 다윗의 왕권의 복도, 성령의 기름부음의 복도,
우리가 성결을 이룰 때 임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뒤따라 오는 것이다.
(갈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신28:2-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임하고 받고 따르게 하신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함으로 흠없는 거룩을 이루었을 때이다.
아무리 급하다고 연목구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할 수는 없다.
성결하지 않고 축복을 이룰 수 없다. 영광을 이룰 수 없다.
성경에서 쓰임 받은 신앙의 영웅들은 다 성결의 과정을 거쳤다.
요셉의 13년간의 고난, 다윗과 바울의 10여년의 고난, 모세 40년, 아브라함 25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영광으로 세우기 전에 그들을 정결케 하고 성결케 한 세월들이었다.
왜 세상이 시끄럽고 어지러운가?
다들, 성결을 이루지 않고 영광부터 이룰려고 하기 때문이다.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라면서 자기는 영광과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고 한다.
인생과 가정이 어지러운 것도 성결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평강도 축복도 없다.
사람들이 죄는 회개하지 않으면서 천국을 이룬다고 한다.
교만과 불신앙,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가지고서 가정천국을 이룰 수 없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간 것은 모든 탐욕의 우상들을 버리고 성결의 결단을 했기 때문이다.
외동딸 디나가 이방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들들이 복수한다고 집단 살인극을 연출하고
난 뒤에 두려움이 엄습하고서야 이 결단을 내리고 벧엘로 올라갈 수 있었다.
(창 35:1-2)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건너갈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 앞에서의 성결이었다.
(수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예수님도 씨뿌리는 비유에서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는 것은
우리 마음 밭을 정결케 해서 옥토밭이 되었을 때라고 하셨다.
길바닥같이 굳어진 완고한 마음, 조그만 핍박에도 무너지는 옅은 흙 믿음,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의 가시떨기들을 걷어내야 하는 것이다(막4:19).
이런 길바닥같은 마음, 돌밭같은 마음, 가시떨기의 마음을 제거하지 않은 채
아무리 100배의 복을 추구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축복과 영광을 꿈꾸기 전에 내 마음 속에 있는 이 불결한 것들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고난이 길어질 수 밖에 없고 흑암과 혼란이 주인노릇을 하게 된다.
마음 가죽을 베고 내 마음에 할례부터 행하는 것이 형통의 열매를 거두는 첩경이다.
(렘4:1-4)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우리 주님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음으로 죄를 그치게 하셨다.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고, 우리도 그 많을 고난들로 인하여 죄를 그쳐야 한다.
(벧전4:1-3)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시는가?
그런 사람만이 성품과 삶에서 거룩함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과 내 마음을 따라 살 수밖에 없다.
악인의 꾀를 따라 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것은 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복을 멀리하고 사망과 멸망을 불러오게 된다.
3. 일이 먼저가 아니고 성품이 먼저이다.
1) 우리의 성품과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 흠없이 거룩해지는 것이 먼저이다.
그러면 형통과 축복과 영광은 임하게 되고 미치게 되고 받게 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일관된 축복의 원리이다.
구원은 믿음과 은혜로 받지만 축복은 우리의 성결과 그 행함으로 받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의롭다함을 받았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아담의 후예로 아담 안에 있다가 그리스도 안으로 우리의 영역은 옮겨졌다.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는 영역에서 은혜와 의가 왕노릇하는 영역으로 옯겨졌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가 되었다. 그렇게 믿고 여기고 그렇게 살라고 로마서는 말씀한다.
(롬6:10-11)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 몸을 이룬 자로서,
이제 우리가 힘쓰고 애써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죄와 사욕에 순종하지 않고,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다.
(롬6:12-14)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죄가 우리를 주장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결단하면 이제 능히 죄를 이길 수 있다.
우리가 결단하지 않고 끌려가기 때문에 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여기면 죄를 이길 수 있다.
우리 몸과 마음을 죄에게 드릴 것인지 하나님께 드릴 것인지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도와서 점점 더 승리하게 할 것이다.
죄의 종으로 끌려가면 사망에 이르고 이기면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게 된다.
(롬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2)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항상 흠없고 거룩한 모습으로 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앞에”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행복과 다른 어떤 것에 앞서
먼저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언제나 무엇보다도 먼저 거룩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이 거룩하심같이 우리도 거룩하라고 하신다.
(레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우리 주님도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한다.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나 교회가, 주님 앞에,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는 것,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고 한다.
우리의 급한 축복과 영광에 눈이 가려 이 말씀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환경에 변화가 없다고, 우리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체념하며
지루하다고 힘든다고 흩트러져서 아무렇게나 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조금 거룩을 추구하다가 말아버리는 것이 우리의 한계이다.
작심삼일 밖에 못가는 우리의 결심과 의지에만 매달리지 말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공로와 목적을 생각하고
우리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분과 지위를 말씀을 통해 알고 새기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안에 있음을 알고 그분을 의지하여 결단하기를 바란다.
내가 왕인 줄 확실히 알면 내 몸을 함부로 굴리고 거지처럼 양아치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당장 왕의 축복과 환경이 없다고 함부로 살지 않을 것이다.
왕의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이 할 것이다.
(요일3: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로의 소망을 가진 자마다
환경에 눌리지 않고, 죄에 끌려가지 않고,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것이다.
고난이 인내와 연단을 이루고 소망을 이룸을 믿고 기다릴 줄 알게 될 것이다.
3) 우리의 흠없는 거룩함은 “사랑 안에서”이어야 한다.
도덕적인 차원에서 기계적으로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거룩함이 아니다.
옛날 양반들의 갓쓰고 도포입고 갈지자 걸음의, 냉수 먹고도 이빨 쑤시는 외식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그것을 즐거워하는
가운데서의 흠없는 거룩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그러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님과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고 거룩함을 이루어야 주님을 볼 수 있다.
(히 12:14)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사랑으로 화평함과 거룩함에 있어서 우리는 걸리는 것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히브리서 3:1에서는 우리를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한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거룩의 씨는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성도이고, ‘신의 성품“에 이미 참여한 자들이다.
4. 하나님 앞에서, 사랑 안에서, 흠없는 거룩함을 이루어가야 한다.
티나 주름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져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축복과 영광을 앞당기고 임하게 하고 미치게 하고 받게 할 것이다.
고난과 위기가 올 때 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성결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수준은,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서 이루고자 하시는 수준은,
티나 주름이 없는, 흠이 없는 거룩함이다.
베드로 사도도 마지막 편지에서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이 흠 없는 거룩이다.
(벧후3:11-12)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3:14-15)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일보다도, 흠없는 거룩함을 이루는 일을 우선으로 여기고 헌신하자.
그 우선이 축복과 영광을 이룸을 명심하고 나아가자.
보이는 잠시의 영광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우리 신앙의 푯대로 삼자.
'좋은 말씀 > 강대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 (고후 11:1-5) (0) | 2016.06.27 |
|---|---|
| 내 계명을 준행하면 (레 26:1-13) (0) | 2016.06.25 |
| 긍휼과 복 (마 5:1-7) (0) | 2016.06.24 |
| 갈급한 영혼 (시 42:1-5) (0) | 2016.06.23 |
| 새해 새사람 (고후 5:17) (0) | 2016.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