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성령론

로이드 존스, 「성령론」(2)

새벽지기1 2016. 5. 23. 19:31


2 장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증거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의

첫째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소욕이라는 용어는 강하게 소원하다’, ‘강한 영향을 투입하다라는 의미다.

육체는 성령을 거스려 강한 욕심을 내고 있다. 성령 역시 육체를 거스려 강한 욕심을 부린다.

우리를 위한 성령의 바램은 우리가 육체의 영향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신다.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어떤 부모든지 그 부모라면 자녀의 행복과 평판을 위해서 질투를 가지듯이,

사랑하는 애인이 그의 사랑하는 사람의 복락과 명성을 위해서 진력하듯이,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질투하여 시기하는 성정을 가지는 정도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죄와 율법과 사망에서 구속받았다.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 속에 그의 영을 두셨다.

우리가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은 사실이며

또한 죽을 몸에 남아 있는 죄가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도 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나니이 육체의 요소가 우리 속에 남아 있어서

우리의 가장 높은 유익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령께서 그 육체에 대하여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죄와 마귀에게 이용되는 극악한 영향에서 우리를 구출하고 구원하려고

성령께서는 질투하는 시기를 가지고 육체를 향해서 대적하고 계시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속에 계신다. 그는 모든 형태와 모양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죄로부터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방을 갈망하고 계시며 우리의 궁극적인 영화를 갈망하고 계신다.

그 목표를 향해서 그는 우리를 인도하여 나가고 계시며

질투하는 시기를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열심을 내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지(理智)와 마음과 의지에 역사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를 위한 성령의 이 사모하심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녀인 것을 실제로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다면 나의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사고방식을 그로 하여금 주장하시게 한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다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인생에 대하여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비교하는 첫째 요건은 이 영적인 관점이다.

비그리스인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8:7).

그리스도인은 육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영적인 관심을 가진다.

그는 신령한 일에 맛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아닌 사람은 영적인 기능을 가지지 있지 않다. 그래서 그는 영적인 생활을 누릴 수 없다.

성경강해에 흥미가 없고 성경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에게는 그것이 전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런 일들에 대해서 순전히 지적인 관심만을 가질 수 있는 이면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언제나 마음 속에 그 위험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영적인 사람은 영적인 생각을 가진 동료를 즐거워하고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모임을 좋아한다.

 

그는 자기의 영혼과 영혼의 운명에 관심을 가진다.

이 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보는 일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일이다.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성령을 자기 속에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삶 중에서, 이 감추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하나의 순례길이요, 나그네 길이요, 잠시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또한 세월이 갈수록 우리들이 참된 영역에 속해 있음을 의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하등의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도 한 때 다른 일에 관심을 가졌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에 흥미를 가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문제되는 것은 속사람이지 겉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겉사람은 날로날로 부패한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시민권을 하늘에 있다”(3:20-21)라고 말한 것과 같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시간 전체를 그런 것으로 생각함으로 소일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지 않다.

다만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점점 더 영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며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갈수록 격리되어 가고 있으며,

여러분이 속한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느냐를 묻고 있을 따름이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다고 말한다면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들이 가진 표지들 가운데 하나다.

 

2.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사람을 지으셨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에 있어서 제1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이다.

육에 속한 사람’, 아직도 죄 가운데 있는 사람’, ‘율법 아래 있는 사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영광을 살다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자기 최고 관심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순간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할 수 있다. 중생한 사람에게만 그런 일이 있다.

 

3.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 크게 바라게 된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성령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신다.

성령이 내 속에 계신지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환상을 본다거나 방언을 하는가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크게 사모하는가? 그것이 최고의 표준이다. 성령은 언제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어디서 이 지식을 얻는가? 신약과 구약에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성경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다.

위험은, 성경을 기계적으로 규칙적으로 읽으면서도 주님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이 하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는 것이요

주님과 아버지를 찾아서 내가 이 지식에 친밀해지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아들됨은 기도에서도 나타난다. 성도들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들을 읽어보라.

그러면 언제나 그들은 많은 시간을 기도함으로 보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기도할 때 그들의 소망은 그들이 이러한 지식을 가지는 것이었다.

 

4. 하나님을 위한 자기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늘 염려하고

주님, 내 사랑이 약하고 연약해서 늘 걱정입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런 관심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시는 증거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5.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더욱 더 깨닫게 된다.

 

성령은 빛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며 거룩한 영이다. 우리 속에 있는 진정한 상태를 깨닫게 된다. 이런 일은 회심 전에 죄를 깨달을 때 일어난다. 거기서 머물지 않고 그것은 좀 더 깊어진다. 더 완전해지고 순결해지면 해질수록 모든 더러운 것이 더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리 속에 있는 죄 때문에 갈수록 더욱 더 애통하게 된다. 수세기에 걸친 모든 성도들의 간증은 마음의 흑암이나 마음의 전염병으로 불렀다.

 

6. 죄를 지은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괴로워 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죄에 떨어질 때 그는 슬픔을 느낀다.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율법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의 반응이다. 고린도후서 7장에서 세상의 근심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구별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9,10).

 

7. 점점 더 죄와 악과 유혹이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예민해진다.

 

8. 자기 속에서 의와 거룩을 사모하며 갈망한다.

 

9. 그 갈망을 행동으로 옮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8:13)

몸의 행실을 죽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육체에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기 속에 있는 어떤 요소들을 좌절시킨다. 눈과 귀를 조심스럽게 지킨다..

야고보, “세상과 합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이것들은 영혼에 해를 끼치는 것들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1,12)

 

10.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지 여부는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5장에서 사도는 육체의 일성령의 열매를 대조시키고 있다.

만일 우리가 영에 인도함을 받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갈수록 맺게 될 것이라는 것은,

밤 다음에 낮이 온다는 것만큼 확실하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

화평. 오래 참음,

자비, “그는 상한 갈대로 꺽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신다

이것은 의분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외식 때문에 분노하셨다.

양선, 충성.

온유- 성령의 인도를 주장하면서도 온유와 겸손이 빠진 사람들의 예. 영적인 교만과 자기만족에 젖음.

절제- 자제와 훈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근신하는 마음은 절제와 자제와 일관성과 훈련을 의미한다. 근신하는 마음은 충동이나 느낌에 또 가시적인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다.

 

결론

 

나는 여러분이 이러한 내용에 대해 완전한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 가운데 어떤 증거라도 여러분 속에서 발견하느냐는 것을 말한다.

작은 증거나 흔적이 있으면 그리스도인이요, 매우 작은 영아요 갓태어난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머물지 말아야 한다.

 

은혜 속에서 자라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한다. 점점 성숙해가야 한다. 절망감을 갖지 말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여러분 속에 가냘픈 빛밖에는 없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성령은 질투심을 가지고 여러분을 갈망하고 계신다.

그의 바램은 하나님께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랑할 거리가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읽히울 수 있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편지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