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쉐퍼의 사회 개혁운동의 시대적 이해(2)

새벽지기1 2016. 5. 20. 22:37


근대세계의 정치 문화의 흐름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서구의 상황은 매우 급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하게 정치. 경제의 측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닌 것이다. 쉐퍼가 제시하듯이 이러한 변화의 원줄기인 사상의 흐름 또한 급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프란시스 쉐퍼가 1947년 유럽을 여행할 때 보았던 심정은 바로 이와 같은 사상의 변화였던 것이다. 그는 유럽의 상태가 참으로 끔직한 상태인 것을 보았다. 특별히 개혁주의적 교회의 현실은 심각하였다.


한 예로 제네바 국가 교회의 60명의 목사 중에 2-3명만이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이었다. 또한 세계교회 협의회[The Word Council of Churches]의 창설[1948년]을 앞두고 1947년6월에 세계 교회 협의회[The Word Council of Churches]의 회원들에게 연설한 비셀트 후프트 박사는 말하기를 "원로들을 몰아내서 더 많은 교회들을 가담시키기 위해,자신들의 교회들에서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정면대결하라"고  젊은이들을 부추기는 그의 연설은 유럽의 영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의 신학사상은 칼바르트와 폴틸리히의 사상이 유럽을 위시하여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것은 20세기 후반의 성경을 믿는 교회의 위기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회의 상황은 2차 대전을 전후한 사상의 흐름이 어떻게 흐르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쉐퍼는 20세기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사상의 위기에서 왔다고 본 것이다.

낙관주의의 파산

특별히 2차 세계대전은 서구의 지성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낙관주의에 대한 극심한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초의 상황은 그야 말로 세계적인 사건들로 극화될 수 있었다.이렇게 세기의 전환기에 있는 사상가들은 강력한 과학적 사고방식들이 인간의 문제를 검토하는 데에 적용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학적 낙관주의는 새로운 사회를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회는 완전히 합리적인 사회요 과학에 의한 낙관론적인 사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흥분은 2차 대전을 통하여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R .P. 쿠조르트 & E. W. 킹은 말하기를 "역설적으로 과학에의 큰 신뢰와 도덕적 진보를 향한 희망을 창출했던 바로 그 사건, 2차 세계대전이 또한 그러한 믿음과 희망을 잠식해가기 시작하는 사건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은 현대 괴학기술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드러내었다. 혼란을 자아내는 시간이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혼란의 시간은 새 힘을 한 곳에 모으고자 다양한 사회사상들을 태동케 했다. 그리고 철학 역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새로운 구원주 역활을 자처하고 있었다. 헤겔의 변증법적 철학의 영향과 전쟁 후에 허무주의속에 빠져있는 사회를 향하여 구원의 손길을 뻗쳤던 키에르 케고르를 시작으로 한 실존주의 철학 그리고 논리실증주의, 실용주의, 과정철학등이 형성되어있었다. 즉 사상의 일치가 아니라 제 각기의 입장을 표명하는 혼란의 상태였다. 이러한 현대 사회사상들의 한결같은 모습은 쉐퍼가 지적하고 있듯이 절대적 참조점을 가지지 못하여 개체 사물들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 모습들이었다. 쉐퍼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모습을 지적하기를 "현대인의 모습 중 첫 번째는 "붕괴"에 도달했다는 것이다.……절대자가 없으면 개체 사물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런데 현대 철학과 과학에서는 절대자 즉 무한한 참조점이 사라진 것이다.…… 비기독교 철학자들은 첫째, 합리주의자였다. 둘째, 이성을 중시했다, 셋째, 이성에 중심을 둔 낙관론자였다. ……이 세 가지의 변화가 오늘날의 현대인과 현대사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결과는 세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는 과학에서의 변화요, 둘째는 철학에서의 변화요, 셋째는 신학에서의 변화이다."

무한하며 절대적인 참조점이 없는 철학과 과학 그리고 신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관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조점이 없으며 개체의 의미가 상실되며, 상실된 개체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즉 죽은 존재다.
프란시스 쉐퍼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시대 사상을 분명하게 인식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이 시대적 혼란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안 선지자였던 것이다. 쉐퍼는 이러한 현대인들이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를 보았으며, 그는 예리하게 자기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포착하였다.

"현대인들은 의미와 가치의 낙관론을 발견하기 위해 사물들을 상층부인 비 이성의 영역에 두려고 처절하게 시도했다. 우선 실존주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르트르는 이성 없는 행동, 즉 의지의 행동으로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불안감이 실존을 확인해주며 결단의 부름이 주어진다. 야스퍼스는 한계체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영향은 알덕스 헉슬리의 약물복용으로 또한 ROCK그룹에 영향을 주고 그 다음에는 힌두교와 불교의 궁극적 체험을 받아들여서 동양 종교의 영향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흐름속에서 사이키델릭 록의 시대, 즉 어떤 형식의 음악을 사용하여 약물 없이 한계경험을 찾으려는 시도가 나타났다.(비틀즈,도어즈등)이런 후에 신비주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미술에서의 살바드로 달리는 초현실주의에서 신비주의자로 그림을 그렸으며 그는 말하기를 "사물이 딱딱한 덩어리가 아니라 에너지로 구성된다는 사실에서 삶의 신비적 의미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신학에 영향을 주어 실존적 신학 방법인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이 나타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