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제들
① 성도의 삶은 장래의 은혜를 이해하고 거기서 비롯되는 자유와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② 장래의 은혜는 나를 위해 발휘될 하나님의 모든 선하심과 능력 그리고 죽음을 넘어 영원토록 나를 붙들어주실 그분의 모든 선하심과 능력이다.
2. 질문: 그 은혜란 것이 무엇인가?(고전 15:10)
3. 정의
①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선하심.
② 자비: 비참한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
4. 타락 이전의 은혜
: 타락 이전, 아담과 하와가 행위에 근거하여 살았는가, 은혜로 살았는가?
① 그 은혜는 비록 결함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은혜는 아니었지만(자비가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한 모든 공급과 채움을 기대하는 삶이었다(은혜다). 타락 이전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도 역시 하나님의 선하심을 누릴 자격과 권한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님을 명시하는 것이다.
② 선악과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John Sailhamer): 선악 즉 유익과 손해를 아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은 이것을 인정하는 믿음이다. 반면 선악과를 먹은 것은 선악에 대한 판단을 자기가 가지겠다고 하는, 즉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다.
③ 결국,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것이다.
5. 범죄후, 은혜와 자비는 항상 함께 나타난다.
① 인간은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은 은혜이다. 그리고 인간의 죄가 인간을 비참한 곤경에 빠뜨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은 자비이다.
6. 은혜가 자비보다 더 거저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① 자비가 비참한 곤경이라는 상황 때문에 주어지는 구속적 조건이라면, 은혜는 '죄의 추악함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자유로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동정심을 유발하지만, 죄는 분노를 유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자비가 은혜보다 하나님께 있어서 덜 자유로운 행위이며, 조건적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거저 주어진다'는 특성이 '은혜'의 정의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7. 거저 주어지지만 조건적인 은혜(약 4:6)
: 벌어들이는 은혜(earned grace)란 있을 수 없다. 용서의 은혜는 회개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은혜)이다(행 11:18; 5:31; 딤후 2:25).
8. 거저 주어지는 은혜
① 하나님은 자유하시다(출 33:18~19).
은혜는 절대로 하나님 자신이 아닌 어떤 것에 의해서 강요되거나 속박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외부의 속박이나 강요와 상관없이 자신이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자비를 나눠주시는 것은 그분의 영광이며 근본 속성이다. 그것이 하나님 되심의 본질이며, 그분의 이름 자체이다.
② 생명을 주는 은혜는 거저 주어지는 은혜다(엡 2:4~5,8).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아무런 능력(생명)도 없을 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먼저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죽은 자를 살린 것은 긍휼의 행위인데(4), 결국 이렇게 자유롭게 긍휼베푸심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핵심이다(5,8).
③ 선택도 거저 주시는 은혜다(롬 11:5).
누군가를 택하시는 이유는 거저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지, 택하심을 받는 자들 속에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④ 다함이 없으신 하나님과 거저 주어지는 은혜(엡 2:6~7)
은혜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라는 개념은 그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다함이 없으시며, 그 은혜의 근원이 마르지 않으며 거기서 영원토록 은혜가 흘러나온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필요로 하시거나, 부족하신 분이 아니시기에,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거저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 의미하는 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자신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에게 한량없이 베풀어주시며 영원토록 베풀어주시기 위해서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당신의 무한하신 능력과 은혜를 드러내고자 하신다.
⑤ 은혜가 제대로 존중되는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도 제대로 높여진다.
은혜가 은혜로 여겨질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장래의 은혜가 존중될 때, 하나님의 영광의 지극히 풍성함도 온전히 높여지고 찬양을 받는다. (장래의) 은혜가 존중되면, 교만이 힘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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