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제
① 교만한 영적 상태가 불신앙의 한 형태이며 교만이라는 불신앙과 싸워 이기는 수단은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이다.
② 겸손은 하나님의 그림자라면, 교만은 인간 본성의 그림자이다.
③ 교만의 반대말은 믿음이다.
④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분 안에서' 준비하신 모든 것들에 만족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다는 것이다.
⑤ 믿음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하나님을 향한 열망(appetite)이다.
⑥ 하지만, 교만은 자아 속에서 만족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탐욕은 물질 속에서 만족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고,
정욕은 성적인 만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고,
비탄(bitterness)은 복수에서 만족을 찾기 위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고,
성급함은 자기 계획을 방해받지 않고 진행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저버리는 태도다.
교만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성향이며, 자기가 하나님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2. 교만의 세 가지 조건(렘 9:23)
① 지혜/지식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고전 8:1)/'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
체스터튼(G.K.Chesterton),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을 품지 말고, 진리에 관해서는 의심하지 말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것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요즘 시대에 인간이 확신하는 것은 그가 절대 확신하지 말아야 하는 것, 바로 자기 자신이다. 반대로 그가 회의하고 의심하는 것은 결코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이다."
우리가 자기 지혜를 자랑할 때, 자기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 된다(고전 1:29, 31). 모든 참 지식은 하나님께로서 나온다(마 16:17; 롬 11:34, 36).
② 용맹/능력(신 8:11~17)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는 생각은 장래의 은혜에 대한 신뢰를 부인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느끼고 깨닫고 있는가 이다.
하나님이 낮추신 사람들
앗수르 왕(사 10:5, 12~13)
느부갓네살 왕(단 4:30, 35~37)
참된 겸손의 표지는 찬양이다!
헤롯(행 12:20~23)
웃시야(대하 26:16)
③ 부함/돈
부함은 자기 만족을 나타내는 거대한 상징이다. 특히 오늘날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호 13:6).
교만은 우리가 자신의 장래를 위해 무엇을 의지하는가에 관한 문제다. 이스라엘은 장래의 은혜를 베푸실 하나님 대신 재물을 의지했다(렘 49:4).
재물로 무기와 군인, 지식도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시 33:16~17).
장래의 삶(가령, 은퇴 이후)을 준비하면서 재물에서 하나님께로 눈을 돌려 그를 의지하는 것이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이 교만의 치료약이다.
④ 심각한 질문: "가져야만 교만한가?"
3. 궁극적 교만: 무신론(시 10:4)
① 자기 기준에서 최상의 위치에 거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자신 위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얕본다.
② 궁극적으로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자기를 설득해야 한다. 하나님의 실재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는 이 권위를 부인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③ 교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싫어하며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약 4:13~17).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허탄한 자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장래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인식을 가지는가, 그리고 그분과 그분의 약속들을 신뢰하는가의 문제이다(대하 16:9; 시 23:6; 히 13:21).
교만을 치유할 해결책은 장래의 은혜에 대한 흔들림없는 믿음 뿐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이다(요 5:44).
4. 교묘한 옷을 입은 교만
① 인정받고 싶은 욕구(Self-regard)
교만의 즐거움은 가려운 곳을 긁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 같다(C.S.Lewis; 마 23:5~7).p.147.
더 좋은 것은 가려운 곳이 없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자기를 잊고 다른 존재를 품는 것이다.
교만한 자의 자기만족(self-sufficiency) 속에는 공허함이 자리잡고 있다.
완전한 자기만족(다른 존재로부터 무엇인가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속성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 대한 목마름에 애타하는 사람은 장래의 은혜를 믿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장래에 베푸실 은혜에 대한 약속'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믿음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들 속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다.
② 나약한 교만/자기연민(Self-pity)
이 교만의 형태는 너무나 교묘해서 겸손으로 비추어지곤 한다. 겸손하고 약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교활한 교만이다!
자랑(드러난 교만)과 자기연민(숨은 교만): pp.149~150을 보라.
"자랑은 자기 만족처럼 들린다. 자기연민은 자기 헌신처럼 들린다."
"자기 연민이 교만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가련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가련한 자기 연민은 무가치함이라는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했다는 느낌에서 나온다.
자기 연민은 칭찬받지 못한 교만이다.
교만이 아주 강하지 않을 때에는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그 모습을 변장한다.
③ 근심으로 변장한 교만
근심도 교만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나약해 보이지만, 이는 자기가 자기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데(또 그렇게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무력감 때문에 일어나는 교만의 형태이다.
그가 장래에 은혜를 베푸시며 그 손에 장래를 쥐고 계신 하나님 안에서 쉴 수 있을 때까지 이런 교만은 없어질 수 없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교만의 한 형태이다(사 51:12~13).
겸손하다는 것은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는 것을 의미한다(벧전 5:6~7).
교만은 자신이 근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성향이다.
기도의 내용이 그 사람의 교만과 겸손을 드러내는 척도이다.
믿음은 도움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교만은 자신이 근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5. 참된 겸손과 참된 만족(렘 9:24)
① 내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사실로 기뻐하고 만족하라!
② 이 기쁨과 만족을 얻기 위해서 댓가를 지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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