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오웬

존 오웬 성령론[9]|

새벽지기1 2016. 5. 12. 21:45

 

Ⅶ.결론 : 평가


종교개혁자 칼빈이 죄 죽임(mortification)과 은혜 살림(vivification)의 교리를 말하였고1), 오웬은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신학화하므로서 신자의 삶에 빛을 던져 주었다. 청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신앙 체험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신학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싱클레어 퍼거슨이 특별히 오웬의 신학에 이르기까지의 언약신학의 발전에 관하여 지적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 언약신학이 16세기에는 성경을 해석하는 열쇠였는데, 17세기에는 그것이 기독교 체험을 해석하는 열쇠가 되었다.2)

  오웬은 신앙체험을 신학화하는 탁월함에 있어서도 다른 청교도 신학자들과는 구별된다. 이 17세기의 체험 신학자 존 오웬이 『성령론』(1674)을 발표한지 약 70여년 후인 1747년에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신앙감정론(Religious Affections)을,3) 그 후로 또 약 70여년 후인 1810년대 초에는 구 프린스톤의 아키발드 알렉산더에 의해 Thoughts of Religious Experience4) 출간되었다. 이 두 저서는 개혁주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본격적으로 다룬 몇 안 되는 걸작들이다.

오늘날 21세기 교회에 17세기 오웬의 신학은 적시성을 지니는가?라는 질문에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시며, 또 그 말씀을 대하는 인간들의 본성 또한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오웬이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여 체험을 설명해준 그의 신학적 저작들은 오늘날에도 또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재천명되어야할 오웬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첫째, 회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강조.

  인간의 노력이 회심이나 성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오웬은 특히 신자의 중생과 회심을 강조한다. 중생이 없는 성화는 없기 때문이다. 성화에 있어서는 인본주의적인 알미니안, 백스테리안, 카톨릭과 카톨릭주의를 배격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성령에 의한 사역임을 강조한다. 오늘날 교회가 신자의 중생과 회심에 대해 무관심 내지는 안일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오웬은 오늘날과 같은 많은 교회들에서 통용되는 천박한 회심의 견해에 대해서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은 청교도들, 특별히 오웬에게 있어서는 죄악된 것이며, 교회를 깨뜨리는 요소이다.


둘째, 성령의 은혜와 성화의 의무 강조

오늘날 교회들이 구원받은 이후의 삶인 성화에 대해 무지하거나 혹은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침으로 인하여 균형을 잃었거나 혼돈 속에 있다. 오웬은 신자의 성화에 있어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에 의한 성화를 강조한다. 즉, 성화에 있어서 성령의 주도적인 사역을 강조한다. 은혜를 입어 중생한 신자는 하나님을 향해서(to God) 살도록 재창조함을 받았기에 그에게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성화에 있어 성령의 주도적인 은혜의 사역과 신자가 믿음의 순종으로 성화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화의 의무를 감당함에 있어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의무를 감당 할 수 있느냐’라고 하면 ‘전혀 없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셔야만 우리는 은혜를 따라 우리의 거룩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고, 여기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결의적인 행동이 있어야 이 일을 온전히 이루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인간 편의 노력이나 열심이 없는 사람이 회심이나 성화의 은혜에 참여할 수 없다. 오웬은 이 양자(兩者)의 균형을 이루어 개혁 신학의 백미를 보여주고 있다. 성화는 신적인 사역인 동시에 여기에 순종하는 인간적인 반응을 요하는 인간적인 사역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성화의 주체는 성령이시며, 인간은 그분에게 피조물로서 마땅히 드려야할 순종을 드린다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사역이라는 것이다.


셋째, 성화에 있어서의 성화의 의무들을 수행함을 강조

  오웬은 은혜체험과 신자의 의무, 둘 다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신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힘써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성화의 본보기가 되신다. 우리는 그를 닮아야 하고, 더욱 영적으로 은혜스러운 영향을 많이 받아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우리도 살고, 예수님이 행하신 것처럼 우리도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의무(the duty of faith)를 잘 감당해야 한다. 신자는 성화를 위한 의무들, 곧 ‘기도’와 ‘묵상’, 그리고 ‘죄 죽임(과 은혜살림)’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며, ‘게으름(나태함 혹은 태만)’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 오늘날처럼 신비주의적 영성이 기독교적인 진정한 영성인양 대두되는 시점에서 더 더욱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의 유산인 ‘실천적 영성’은 더 강력하게 요청된다.


넷째, 성화의 소극적 차원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강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신자들에게 ‘번영’을 축복으로 가르치고, 신자들은 ‘십자가가 없는 신앙생활’을 마치 축복인양 간증을 한다. 오늘날 신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많이 강조되고 가르쳐 져야할 부분이 있다면 ‘성화’ 관한 교리이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성화’에 대해 무지하거나 혹은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성화를 마치 전무한 제로(zero)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쌓아가는 것처럼 인식되고 또 가르쳐지고 있다. 성경공부와 기도와 교회봉사를 통하여 성화의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화는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를 죽이는 실천적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통’하게 된다. 이러한 신자의 삶은 이 시대의 교회가 회복해야만 할 사활이 걸린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성화에 대한 실존적 영적 전쟁(靈的戰爭)으로서의 인식은 이 시대의 기독교의 실패에 대한 바른 대안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종교개혁 이후로 가장 뛰어난 청교도 신학의 거장 존 오웬은 ‘성령론 신학자’였다.  그의 신학이 공허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이며, 실천적인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았으며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신학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다. 그러한 것에 관하여 가장 진지한 고민을 했던 청교도 오웬이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남겨 놓은 성령론의 중생과 회심 그리고 신자의 성화의 삶에 관한 촉구는 오늘날과 같은 혼돈의 시대에 신자의 삶에 나아가야할 길에 빛을 던져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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